NEAR Policy Brief

우크라이나Vol. 9 우크라이나 전쟁의 함의: 전략적 중립지대의 축소와 범 동맹안보의 필요성 (이재승 고려대 교수)

NEAR Policy Brief Series 는 국제 사회 내에서 수 없이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정책 이슈를 다룹니다.  핵심 정책 현안을 선정하여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책 제언을 듣고자합니다.격류를 타고 가는 시대 흐름을 올바로 적시에 파악하는데 다소마나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발행 일시 : 2023년 7월

발행 기관 : NEAR 재단

집필 제목 : 우크라이나 전쟁의 함의: 전략적 중립지대의 축소와 범 동맹안보의 필요성

집필 정보 :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우크라이나 전쟁의 함의: 전략적 중립지대의 축소와 범 동맹안보의 필요성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1. 전쟁의 지속: 중립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4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전쟁은 장기전, 소모전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현 상황에서 종전 및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뚜렷한 전망이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의 안보 체제 및 국제 질서에 있어서는 몇 가지의 근본적인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통안보의 개념들을 전면으로 복귀시켰다. 힘에 기반한 현실주의, 무력의 사용과 전면전, 영향권(sphere of influence), 통제권(sphere of control), 핵무기 사용 가능성, 전쟁범죄와 인권 유린 등의 이슈들은 국제 질서를 2차대전 시기로 되돌려 놓았다. 이와 더불어 에너지와 식량 등 자원의 무기화 현상도 진행 중이다. 신자유주의, 제도주의적 국제질서가 일부 붕괴되는 과정에서 힘에 의한 지정학적 갈등관계가 유라시아의 양측에서 부상되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한 현실주의적 전통안보의 재부각은 유럽 안보에 있어 중립주의의 쇠퇴라는 변화를 가져왔다. 러시아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NATO의 동진과 확장 방지는 오히려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NATO 가입을 추진하면서 오히려 NATO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는 제도적 중립에 가까우며, 가치의 중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위스의 이그나치오 카시스 대통령은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유국가의 주권, 자유, 민주주의, 인구와 제도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침략자의 손에 노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고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유럽에 있어 중립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다른 국제 지정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과정에서는 외형적 중립 뿐 아니라 가치체제를 포함한 내면적 중립 요소를 유심히 보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중립 및 비동맹을 통한 평화구축의 방안은 전쟁 초기 논의된 바 있지만, 이 방안이 적실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일련의 전제조건들이 따른다. 서방도, 러시아 편에도 붙지 않는 중립은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의 문제는 우크라이나는 중립을 지킬 힘이 있는가, 주변 당사국은 중립을 지킬 의지가 있는가의 질문에 답해야 설명이 가능하다. 중립화는 모든 이해 관계자가 동의하고 스스로를 구속해야 하는 다자간 협정이다. 중립국은 주권과 영토를 훼손받지 않는 대신 군사 동맹에 가입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중립화는 중단기적인 안정성을 가져올 수는 있었지만, 전략적 중립은 영속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는 실제로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2014년까지 NATO에 가입하지 않은 비동맹(중립)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4년 크림 반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303대 8로 공식적으로 중립 체제를 종료하였다. 1994년 12월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OSCE 회의에서 서명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 (1994) (Budapest Memorandum on Security Assurances)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핵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하고 영토 내 핵무기를 러시아에 양도하는 한편 러시아, 영국 및 미국이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및 카자흐스탄에 대해 군사력 또는 경제적 강압을 위협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안전 보장 조치를 확약받았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의 경우 이러한 우크라이나와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의 학습효과가 핵 개발 및 보유 의지의 강화와 핵 협상에서의 강경 입장으로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U 및 NATO 회원국, OECD 및 G7 국가군에서는 중립의 쇠퇴와 가치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 명확성이 부각되는 한편, 비동맹과 전략적 모호성은 오히려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BRICs 국가들과, 이를 축으로 형성되는 남반구(Global South)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인도는 2022년 서방 차원의 대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입에 있어서 러시아를 제1의 공급국으로 올리면서 구매량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러시아는 이를 통해 석유 수익의 급락을 방지할 수 있었다. 국제 사회에서는 단기간의 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연대와 국제규범의 보호를 주장하는 진영과, 정치적 파트너십과 경제적 파트너십을 분리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진영이 전략적 명확성과 모호성의 개념을 놓고 양분되어 가는 추세가 보이고 있으며, 이는 유럽 지역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응을 놓고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어느 국가군과 동맹체제를 갖추는지는 전략적 명확성과 모호성을 선택하는 일차적 기준이 된다.

전쟁은 언제 끝나는가의 질문은 쉽게 답하게 어렵지만 통상 다음의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1) 한 쪽이 완전한 (또는 충분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2) 양쪽이 전쟁으로 더 이상의 해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3) 양측이 더 이상의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질 때; 4) 예상치 않은 국내외 정치적 환경 변화. 현재의 상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종전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상황 전개는 4)번째의 조건에 있어 전쟁의 역학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른 상황변화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2. 러시아 내부의 불안요소는 증가하는가?

최근 러시아의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반란사태는 예상치 않았던 러시아의 내부의 균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의 진행은 결과 여부와 관련 없이 전쟁과 관련한 러시아 내부에서의 정치적 결속력에 대한 일련의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중재로 일단 반란 상황이 마무리되고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용병들이 벨라루스로 피신한 상태이지만, 갈등의 씨앗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현 상황에서 바그너 그룹의 뒤를 이을 반란군이 다시 등장할지는 명확치 않고, 푸틴의 내부적 통제도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정치적 지지율도 여전히 압도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전쟁의 지속에 따른 경제 침체와 잠재적인 여론의 악화는 러시아 국내정치에서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푸틴에 집중된 군 통수 및 지휘체계에 대한 비판은 전쟁 초기부터 제기되어 왔다. 주요 전쟁 수행 주체였던 바그너 그룹의 이탈로 향후 전쟁 수행 주체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으며 군 통수에 대한 거버넌스 역시 추가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내부적 불안정성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러시아가 보다 강성 기조의 전쟁 수행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장기전 체제가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니지만, 자원의 투입과 군 지휘체제의 강화라는 요소는 향후 더 많은 정치, 군사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직 모든 정보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상황전개를 예측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권위주의 국가에 있어서 내부적 반발의 등장은 전열의 분절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 여러 지역 및 도시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인 반발이 나타날 경우에는 대규모의 정치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하지만 현재 그러한 조짐이 발견되고 있지는 않고, 이번 사태는 단발적인 사례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반군에 대한 유혈진압 및 보복이 추가로 이루어질 경우 중장기적으로 정치적 반대세력이 파편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3. 범 동맹주의 구축의 필요성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내부적인 전쟁 수행 의지와 서방 지원의 결속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 달려있다. 전쟁이 1년이 넘어가면서 장기전의 성격을 가지게 됨에 따라 전쟁 피로도 역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의 내부적 결속력은 전쟁 상황을 상당기간 버텨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공화당의 예산 지출 및 성과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크게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하고, 아직까지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양당의 합의가 존재한다.

NATO와 EU 차원에서도 유럽 진영의 결속력은 보여지고 있다. 일부 국가들에서 피로감이 올라가고, 프랑스가 “현실적 타협안”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지원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서방 차원의 지원체제가 원활히 작동하고 있기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항해서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아시아 및 한반도의 전략적 급변사태에서 한국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진영은 현재 우크라이나 지원 주체와 거의 유사하다.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 NATO 및 EU 회원국들이 여기에 포함하며, 실제 군사적 지원이 가능한 주체와, 비군사적 지원 주체가 포함된다. 따라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태세는 “가치동맹”의 입장에서는 향후 유사하게 진행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동맹 뿐 아니라 한미일, AP4, NATO+AP4, G7등의 일련의 양자, 다자관계기구들을 안보의 동심원을 확장 및 중첩시키는 넓은 범위의 범동맹외교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범 동맹주의” 구도는 분쟁 상황의 물리적 구도 뿐 아니라 공공외교 및 국제여론 형성에도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만약 동아시아의 급변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러시아라는 단일 주체보다 중국이 관여하게 되고, 이에 대응하는 상황에서는 중국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상쇄할 수 있는 더 큰 차원의 물리적, 법적, 경제적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는 개별 양자동맹의 안보구도로 대응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다. 침략국의 강압에 의한 “가짜 논리” “가짜 동의” 등에 기반한 논리전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국제정치 및 국제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치의 연대 및 소프트파워 연대 역시 중요하다. 앞서 논의한 전략적 명확성과 모호성 간의 선택은 이러한 범 동맹구조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범 동맹주의의 구축이 중국, 러시아 및 인도/남반구 국가들과의 대화와 공조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특히 논쟁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협상을 지속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와 명분이 필요한 시점에는 “like-minded” 파트너들과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고, 동시에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한 부분은 해당 국가와의 양자관계 뿐 아니라 “같은 고민을 하는(having the same concerns)” 주체들과의 공조를 일차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외교적 레버리지가 강화되어야 안보의 상대국들과 보다 의미있는 협상이 가능하다. 균형적인 외교적 포지셔닝이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할 수 있지만, 현재의 지정학적인 재편 과정 속에서 우방과 적대국 양측에서의 레버리지를 약화시키는 “마이너스 섬” 게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