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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 中에 편승하던 시대 끝 … 美주도 첨단 공급망 환승해야" (매일경제 23.05.23)

"한국, 中에 편승하던 시대 끝 … 美주도 첨단 공급망 환승해야" (매일경제 23.05.23)


新워싱턴컨센서스 의미 진단


미국의 '신(新)워싱턴 컨센서스'가 촉발시킨 국제 질서 변화는 한국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 분쟁이 새 국면을 맞는 가운데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선 한국 경제가 기존 한미·한중 관계에서 벗어나 산업정책의 패러다임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2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세계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GVC)과 중국의 제조업 공급망이 대결하는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며 "한중 관계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면서 한국도 이에 맞는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국, 대만 등 다국적 반도체 기업 압박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강력 견제하자 중국도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을 직접 겨냥하면서 미·중 반도체 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대중 관계에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축소) 시대를 선언하며 새로운 미·중 관계를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신워싱턴 컨센서스는 그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고해성사'라는 게 정 이사장의 판단이다. 정 이사장은 "예전 워싱턴 컨센서스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안보는 미국 주도로, 경제는 자유주의 질서에 따라 굴러가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맞는 것으로 봤다"며 "하지만 굉장히 이상주의적인 판단이었고 이번에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이전으로, 중국은 난징조약 이전으로 돌아가는 복고주의 시대"라며 "중국을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미국이 동맹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는데 적어도 버락 오바마 정권 때 지금처럼 정책을 전환했어야 한다고 자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미국 홀로 중국을 제어하려던 것과 달리 조 바이든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먼저 동맹 규합에 나섰다는 것이 정 이사장의 분석이다.

정 이사장은 "자유무역이 정상 작동했던 과거에는 외교만 잘하고, 동맹과 잘 지내면 됐지만 이제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자유무역에서 자국 산업 보호시대로 전환되면서 전 세계는 공급망 확보와 산업정책 경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됐다. 정 이사장은 "미국은 안보 동맹체제를 과학기술 동맹으로 확장하며 기존 공급체계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며 "세계 무역체제가 우루과이 라운드 이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제조업 분야가 미·중 충돌의 새로운 접점이 되면서 중간에 끼인 한국의 '포지셔닝'은 더욱 풀기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이 되고 있다. 정 이사장은 "그동안 한국은 중국의 발전 경로에 편승해 왔는데 그 결과 무역의존도가 25%로 커져버렸다"며 "선진국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이나 전 세계 산업기술 정책 변화에 맞춰 미국 주도의 과학기술 동맹체제에서 환승해 고도기술 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경제 예속 관계를 피하려면 대중국 무역의존도를 지금의 25%에서 15%로 줄여야 하고 산업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자연 추세이기도 하다"며 "모자란 10%를 어디서 메울 것인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중 분쟁 격화에 따라 현실화하고 있는 미국 없는 중국시장, 중국 없는 미국시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정 이사장의 주장이다.

앞으로 중국의 생활·생계 물자와 의료 복지·사회 서비스 등 기본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한중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체제의 아킬레스건은 국민의 생활과 생계, 생존 인프라를 확충하지 않으면 정치 체제의 불안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제 중국시장의 기회는 민생·소비 부문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시장에서는 리쇼어링 전략에 따른 부품, 생산기술 공급의 기회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선진국과 핵심·원천·틈새기술을 두고 경쟁이 불가피하고 중국을 압도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축으로는 중국 주도 GVC에서 업스트림 분야를 장악하고 또 다른 축은 고도 부품·소재 산업 육성으로 미국 등 서방 GVC에 동참하는 전략이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소명은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신산업 정책에 달려 있다"고 조언했다.


@임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