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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매경이 만난 사람] 文정부 2년 평가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매일경제 2019/5/7)

[매경이 만난 사람] 文정부 2년 평가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매일경제 2019/5/7)


국가와 진영의 이익이 충돌할땐…진영 이익을 버려야

앞으로 3년은 과거집착 버리고
촛불세력에 대한 부채의식 벗어
미래, 혁신, 축적의 정치 이뤄야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고수하면
지지세력 표 얻을 순 있겠지만
국가 경제는 침체 빠질 위험 커

급속한 경기하강 진행 국면에서
고임금·증세정책 전면수정하고
親시장 정책라인으로 교체해야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니어재단의 정덕구 이사장(71) 사무실에 들어서자 '진충보국(盡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이라고 쓰인 커다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 이사장은 "국가 공동체의 이익과 나의 이익이 충돌할 때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혹시 나의 이익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담금질하기 위해 진충보국 문구를 사무실에 걸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28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뒤 민간에서 많은 제의가 있었지만, 이를 모두 뿌리치고 직접 재단을 만들어 10여 년간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에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정 이사장과 마주 앉은 이유는 출범 2년을 맞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그의 진솔한 평가와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식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정 이사장은 먼저 문재인정부의 지난 2년을 '촛불정치·구름 위에서 하는 정치·과거 정치·이념 정치·진영 정치'라고 명명했다. 권력을 장악한 촛불세력이 적폐 청산 등 과거에 집착하며 지난 60여 년간 이룬 우리의 축적을 상당 부분 평가절하하고 태우려 한 시기라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앞으로 남은 3년은 이제 구름에서 내려와 땅 위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하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면서 혁신과 축적의 정치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와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했던 정 이사장은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낙제점을 줬다. 그는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경기 하강 국면에서 고임금 정책, 증세 정책을 쓰는 등 이념적 정책들이 질주하면서 큰 후유증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정 이사장은 "적폐 청산을 외과 수술하듯이 정교하게 암세포만 겨냥해서 해야 하는데 무차별적으로 진행하면서 적폐가 아닌 시장 세력까지 모두 태웠다. 이 결과 시장이 위축됐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재인정부의 지난 2년을 평가해 달라.

▷과잉 이념의 시대였다. 한쪽에 쏠리며 속도 조절 없이 질주했다. 그러다 보니 경제·사회·정치 등 모든 생태계에서 침하가 진행됐다. 또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봤다. 자본과 노동을 대립 관계로 보면서 지나치게 노동만 중시했다. 소득이전 정책, 분배 정책에만 치우쳤다. 이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멀리 가지 못한다. 결국 예상보다 큰 후유증을 겪으면서 고전한 2년이었다. 한 진영의 이념만 가지고 이 큰 나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아야 할 때다.


―국가의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많았다.

▷의회 중심의 공화정이 흔들리고 나라의 위기를 관리하던 관료사회는 약화됐다. 반면 참여연대,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시민사회가 국가 중심 세력이 됐다. 대통령도 이들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촛불세력에 과도한 부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기본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국가 지배구조의 한 축이 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경제 위기라고 하면 단기 위기를 의미했다. 지금은 새로운 복합 위기이고 생태적 위기다. 대외 경제환경도 부정적이고 국내 산업의 성장 기반 역시 붕괴되고 있다. 또 인구 구조, 고용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히면서 경제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것이 금융·외환 부문으로 확장되면 더욱 위험해진다. 호수 바닥이 말라서 생태계가 다 죽어가는 것이다. 경제가 나빠지니 재정 정책을 통해 돈을 푼다고 하는데, 말라가는 호수에 물을 조금 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호수 바닥 쓰레기를 다 걷어내는 구조조정을 하고 혁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재정자금을 퍼부어 경기를 일으키려 한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가 경기 침체의 진입로에 있을 때 정책 배합을 거꾸로 해 침체를 장기화시켰던 하시모토 류타로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정부도 혁신성장을 강조하는데 잘 안 된다.

▷우선 정부의 과잉규제 문제가 있다. 과감하게 규제를 없애야 한다. 정부는 간섭하지 말고 인프라스트럭처를 깔아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특히 미래 산업 기술 인력의 공급 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꿔줘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 때 사회적 합의만 기다려서도 안 된다. 꼭 필요하면 대통령이 절박함을 가지고 직접 나서야 한다. 각종 이익집단이나 노조가 발목을 잡는다고 끌려다니면 안 된다.

문재인정부의 진보주의적 인간관도 혁신성장의 장애 요인이다. 평등주의에 입각해 생산성에 관계없이 동일 임금을 주자는 발상은 위험하다. 이런 체제하에서는 절대 혁신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 혁신성장은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목숨을 건다는 자세로 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한 정책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계속하느냐. 진보진영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 자기들에게는 이익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가 자기 지지자들만 바라보면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지 못한다. 특히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표 계산을 해보면 더더욱 공개적인 후퇴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후유증이 커지면서 변화의 기류도 있다. 청와대 내부는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경기 침체가 빠를수록 딜레마는 더 커질 것이다. 진영의 이익이 아닌 국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봐야 한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의 경우 내년과 후년은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증세 정책은 재조정해야 한다.


―경제와 관련해 청와대에 조언한다면.

▷지금 청와대 정책 라인은 시장에 대한 이해, 시장과의 게임능력이 부족하다. 우리 경제를 끌고 나가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다. 이념 지향적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보다 시장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을 기용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정책 관료들과도 더 활발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다. 관료사회의 헌신과 희생을 얻지 못한 정권이 성공한 적은 없다.


―문재인정부는 중요 정책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타협기구가 정치권이나 관료들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골치 아프니 너희들이 알아서 타협해 오라는 식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주요 정책을 사회적 대화기구나 공론화위원회에 넘기는데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시민사회라는 점이다. 결국 사회적 대타협이 정치판으로 변질되면서 진영 싸움에 빠진다.


―문재인정부의 남은 3년이 중요하다.

▷지난 2년간을 촛불정치, 구름 위에서 하는 정치, 과거 정치, 이념 정치, 진영 정치로 명명하고 싶다. 이젠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바란다. 앞으로 3년은 이제 구름에서 내려와 땅에서 실사구시하면서 과거에서 미래로 가고 혁신과 축적의 정치로 가야 한다. 또 나라가 지나치게 분열돼 있다. 국민은 진보적 나침판과 보수적 나침판을 모두 들고 당황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 2개 나침판을 하나로 만들어 국민이 한 방향으로 가도록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 민족주의 외교노선은 고립의 길…한일관계부터 복원을

실사구시 외교전략 강조…北에 대한 낭만적 기대 버리고 전방위적 외교노력 병행 주문

정덕구 이사장은 경제관료 출신이기는 하지만 재단 이름 니어(NEAR·North East Asia Research)에서 보듯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폭넓은 연구도 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문재인정부의 외교정책과 관련해 "민족주의적 외교관(觀)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남북 관계는 최대 화두다.

▷지금은 서로 다 포장을 벗겨낸 상태다. 북한과 미국 모두 본심이 다 드러났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는 안 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을 확실히 요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이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 당분간 소강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도 모호한 위치다. 문재인정부는 북한이 이미 개혁개방 쪽으로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판단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강을 건너기는커녕 아직 근처에도 안 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우선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 국격만 떨어진다. 하지만 기회가 오면 주저할 필요는 없다. 주저하면 모멘텀을 상실할 수 있다. 마지막은 큰 그림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등 다른 선결 요건을 무시하고 남북 관계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 남북 관계는 현재 미·북 관계의 종속변수가 됐다. 낭만적 기대감을 버리고 담대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주변국과의 전방위적 외교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외교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우선 미국과 동맹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해야 한다. 급속도로 냉각된 한일 관계도 복원해야 하고 한중 관계를 실질 협력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진보세력이 중심이 된 문재인정부가 지나치게 민족주의 외교관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처럼 미들 소프트 파워 국가는 민족주의로 가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 냉철하게 봤을 때 우리나라는 위험에 빠지면 독자 생존력이 미약한 나라다. 실사구시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건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긴 호흡을 갖고 지켜봐야 할 장기전이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전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공개적으로 이런 의도를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전술적 후퇴를 하는 모양새를 취할 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다음 세대가 겪어야 할 가장 큰 도전은 중국을 극복하는 일이다. 미래 산업을 놓고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외교 관계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 정덕구 이사장은…

△1948년 충남 당진 출생 △1971년 고려대 상학과 졸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 합격 △1983년 위스콘신대학교 경영학 석사 △1998년 IMF 외채협상 수석대표 △1998년 재정경제부 차관 △1999년 산업자원부 장관 △2000~2005년 서울대, 중국 베이징대, 런민대 초빙교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2013년 중국 사회과학원 정책고문 △2007년~ 니어재단 이사장

[손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