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계적 침하로 경제 하부 구조 흔들리는 중대 상황”
⊙ “창조적 혁신 없으면 잠재성장률 0%대, 결국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것”
⊙ “세종시 이전으로 공무원의 빈자리를 국회의원 보좌관이 차지”
⊙ “IMF 때의 김대중 대통령 벤치마킹해 親시장주의 정책 펼쳐야”
⊙ “일은 덜하면서 고임금 받고 국가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헛된 꿈”
⊙ “최우선 과제는 탈진한 가계 부문을 인공호흡해서 살리는 것”
⊙ “집권 초기 과도한 정책 실험은 부작용 커”
월간조선 2025년 7월호 기사 원문
“한국 경제는 박근혜 정부 후반 이후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쳐 윤석열 정부 3년으로 이어지며 잃어버린 10년의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진영 논리로 지도자를 뽑았고, 이렇게 뽑힌 대통령은 두 나라의 한쪽 대통령이 되어 진영의 이익만 추구하며 그것이 국익(國益)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언가 5%가 부족한 대통령들이 계속 등장하며 한국 문제군을 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이 극단화되는 상황에서 등장한 이재명 정부의 5년은 정치적·경제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성장력과 역동성을 살릴 것인지 더 악화시킬 것인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5년이 될 것입니다.”
정덕구(鄭德龜) 니어재단 이사장이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정 이사장의 말이 무게감을 갖는 이유는 그가 외환위기 환란 속에서 대(對) IMF 협상 뉴욕외채협상 수석대표를 맡아 한국 경제의 속살을 면밀하게 들여다봤고, 지난 20여 년 동안 독립 싱크탱크 기관의 수장으로 동북아 및 경제 연구에 매진해 왔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이사장은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돌연 사임하고,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NEAR·North-East Asia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해 20년간 정치권 외곽에서 활동했다.
“중국 특수 사라지며 ‘피크 코리아’ 우려”
―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입니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전반부까지 10여 년 동안 우리는 ‘중국 특수(特需)’라는 마취제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국가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 노동과 자본, 총 요소 생산성이 약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가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한국 문제군’이 축적된 시기였습니다. 정치, 정액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좌우(左右) 이념 대립은 격렬해졌습니다. 2015년 이후 중국 특수가 사라지고 중국과는 격렬한 경쟁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한국은 방대한 재원(財源)을 기술 개발에 투입했지만, 전략적 집중 투자보다 각 분야에 걸쳐 나누어 먹기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10년’의 씨앗이 됐습니다. 이 결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점차 낮아졌죠. 이 기간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착실히 실행해 상당한 수준의 성공을 이뤘습니다. 시야가 넓고 통합의 리더십이 출중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대통령보다는 진영 싸움에 몰두하며 나라를 두 나라 현상의 분열공화국으로 이끌었던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통한의 10년이었습니다.”
―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성장력 지속 감소, 역동성 감퇴 때문입니다. 성장력이 감소하는 이유는 경제 부문의 혁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구 생태계의 침하로 인구 감소에 의한 노동 공급 감소, 이에 따른 소비 증가율 감소도 중대한 요인입니다. 미국이 일명 ‘매그니피센트 7(애플·아마존·MS·메타·알파벳·테슬라·엔비디아)’ 빅테크 기업을 앞세워 디지털 부문에서 신(新)기술을 만들고, 중국이 ‘제조 2025’를 기반으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 주도권 확보에 매진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잠잠했습니다. 이 결과 한국의 수출 상품 구성은 같은 기간 중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먹거리였던 반도체는 인공지능 칩 선두주자인 엔비디아,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와 비교당하면서 성장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계(家計) 부문에서 일부 탈진 현상이 보이고 민간 소비 지출이 급감하는 현상을 보고 국민은 ‘이것이 피크 코리아 현상이 아닌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돈 풀었지만 마중물 역할 못해”
― 세계가 치고 나가는 사이에 오히려 우리는 후퇴했군요.
“성장력 감소의 두 번째 요인은 코로나19 이후에 목도한 자영업의 몰락입니다. 지금 민생 피폐의 모습을 보면 특히 코로나19 기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자영업의 몰락 현장이 아른거립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3년 동안 가계 부문의 수축 현상이 본격화됐습니다. 최근 3년간 재정 운영에 대한 가치적 대립으로 적기에 재정 투입이 되지 않아 소상공인과 저소득 가계 부문은 탈진(脫盡) 상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자영업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구조 조정을 당한 고급 노동자들에 의해 우후죽순 확대됐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미국은 코로나19 때 재정 적자(赤字)를 감수하면서 일시적으로 문 닫은 자영업자들에게 비교적 큰 자금을 쏟아부으며 경제가 리바이벌(revival)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만들어줬고, 이 결과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민간 소비가 살아났습니다.”
―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때 엄청나게 재정을 풀지 않았습니까.
“전(全) 국민에게 ‘소고기 사 먹으라’며 무차별적으로 돈을 살포했는데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재정을 제대로 풀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아니라 죽어가는 자영업자에게 집중해서 돈을 풀었어야 합니다. 뒤이어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무조건 문재인 정부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며 재정건전성 확보를 주요 정책 기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국가 부채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소상공인, 자영업자, 유통 부문이 빈사(瀕死) 상태에 빠지며 경제 생태계를 침하시켰습니다.”
“단기 처방부터 시작해야”
― 경제 생태계가 무너진 겁니까.
“생태계는 생성, 성장, 소멸, 재생성이 이어지는 순환 구조로 경제도 마찬가지의 사이클로 움직입니다. 경제 정책의 영역을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해서 보면 경제 내부에 존재하는 생태계적 병리(病理) 현상이 보입니다. ‘생태계 병리 현상을 얼마나 조기에 치유하느냐’에 따라 생태계의 건강성이 좌우됩니다. 이 생태계 침하 과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노무현 정부 때 감기에 걸렸는데 치유 없이 넘겨서 이명박 정부 때 폐렴이 되고, 박근혜 정부 때 폐암이 되고, 다시 문재인 정부 때 폐암 말기로 번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온몸으로 전이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계마다 적기 시정 조치 없이 정쟁에만 몰두하다 병이 깊어져 더는 힘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제 평가입니다. 경제 내부의 병리 현상을 점의 단계 또는 면의 단계에서 미리 찾아내 처방하면 암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병리 현상이 온몸에 번지고 나면 경제 전반의 하부 구조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것이 경제 생태계 침하 현상입니다. 경제 생태계는 내부에 있는 가계 생태계, 기업 생태계와 외부에 둘러싸고 있는 정치 생태계, 사회 생태계, 그리고 교육 생태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 이것은 경제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까.
“급속한 성장력 저하, 역동성 퇴조의 문제 같은 것을 가져온 우리 경제의 하부 구조 생태계 침하 현상은 오랜 세월 농축되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얽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잠재성장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문제는 우리의 노동 자본 투입 산출 구조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가계 생태계의 사각형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수축 현상은 구조적 문제로서 단시간 내에 치유할 수 없는 중한 병입니다. 그러나 처방은 단기 처방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재정자금 투입으로 생계 보전을 한다든지, 가계 부채를 유예한다든지,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 등을 먼저 펴면서 기업의 일자리 창출 역량을 지원하는 정책을 같이 시행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정치 생태계와 인물 생태계의 파괴 침하 현상 같은 것은 개헌을 통해 5년 단임 정부가 가진 한계를 극복해야 해결 가능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씩 떨어진다’
― 경제 하부 구조가 침하됐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경제를 둘러싼 기초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노동 공급의 축소로 인한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투자 여건 악화와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자본의 한계 효율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를 둘러싼 하부 구조, 즉 생태계가 침하되는데도 이를 오래 내버려 두고 혁신과 개혁을 게을리함에 따라 잠재성장력의 중요한 요소인 총 요소생산성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는 가까운 기간 내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 수준의 잠재성장력인 0.3~0.5% 정도로 추락하고, 이것이 오래가면 일본형 장기 침체의 길인 잠재성장률 0%로 빠져들 것입니다. 일부 전망에 따르면 우리의 잠재성장력이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0%대로 예측하며 제로 성장이 가시화됐습니다.
“성장률 감퇴는 굉장히 오래된 문제로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씩 떨어진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력과 역동성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한동안 무(無)정부 상태가 혼재되어 가속화가 심화했습니다.”
“재벌, 자기 혁신 부족 인정해야”
정덕구 이사장의 ‘마이너스 성장론’은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준다. 정 이사장의 얘기가 이어졌다.
“재벌 기업에 대한 긍정, 부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재벌은 우리나라 GDP의 40%를 차지하는 중요 섹터입니다. 그들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 요인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술 진보 전쟁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점프하고, 정보화 사회를 리드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소, 중견 기업들이 많이 육성되기도 했습니다. 중소기업만 고군분투했다면 오늘날의 성과를 이뤄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문제는 재벌 3, 4세로 넘어가면서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운 재벌이 많고, 이로 인한 체제의 한계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미국의 ‘매그니피센트 7’이나 대만의 TSMC, 중국 정부의 혁신 드라이브에 맞서 경쟁하는 데 점점 속도감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 재벌 기업의 혁신이 부족했을까요.
“재벌 총수가 10년 가까이 재판에 불려 다니고, 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상속세 등의 고충을 겪고 있으니 쉽사리 혁신에 매진하지 못했다는 자기변명도 일부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핵심 재벌 기업들의 자기 혁신이 부족했던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 회생 대책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정책 공무원의 역할 부재도 한국 경제가 부정적인 상황에 부딪히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가요.
“박정희 대통령 때는 관료가 제도를 새로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며 경제 각 부문으로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지금은 관료가 후선에서 항상 시장을 주시하고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조기경보를 내리고 직접 개입이 필요할 때 적기 시정 조치에 나섭니다. 이것은 정책 관료들의 의무입니다. 한데 이러한 의무를 수행할 정책 관료들이 시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세종시에 유폐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병리 현상이 발견되면 이를 긴급 치유해야 하는데, 국회는 다수당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법안만을 다루려 합니다. 정치 생태계가 스스로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처참합니다.”
‘보좌관 전성시대’
― 어떻게요.
“첫째, 국가 권위 체계가 붕괴하고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하락해, 국가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이 극도로 저하됐습니다. 국회, 행정부, 법원, 언론 등 공공부문 전반에 걸쳐 무력감이 확산했습니다. 둘째, 공공부문의 생산성이 정체됐습니다. 세종시로의 이전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제는 더는 정책 공무원의 헌신과 희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세종시에 유폐됐다고 표현하시네요.
“경제 관료들의 손발을 묶었으니까요. 이런 면에서 세종시 이전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고 봅니다. 일부 지방 이전 효과는 있겠지만, 그들이 시장에서 멀어짐으로써 정책 관료들의 긴장과 예민한 정책의 촉을 소멸시켰습니다. 공무원 수천 명이 세종시에 내려간 것으로 지방 균형이 이뤄졌습니까?
공무원의 빈자리를 국회의원 보좌관이 차지했습니다. 지난 10년은 보좌관들이 많은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보좌관 전성시대’였습니다. 세종시의 공무원은 처음에 상실감에 빠졌다가 이제는 안락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세종시의 아파트 값이 오르고 아이들 학교가 좋은데 불만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박정희식(式) 개발 모형은 정치와 관료, 재벌의 삼각 영합 구조 속에서 상호 견제하는 구조였습니다. 한 축을 담당했던 관료 사회가 무너지다 보니 정치와 재벌이 직접 교류했고 신종(新種) 정경 유착이 시작됐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고위공무원들이 관직을 버리고 민간 기업에 둥지를 트는 것이 소망이고 보편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젊은 공무원들이 투철한 국가관보다 가족의 안위를 더 중시하며 그들의 꿈이 개인화되고 있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는 공공부문 인물 생태계의 병리 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공공부문의, 특히 정치권의 인물 생태계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합니다. 팬덤, 패거리 정치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 보니 훌륭한 인물이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産學硏 하나”
― 공공부문이 바뀌어야 하는군요.
“공공부문에 대한 대혁신 운동이 필요합니다. 국정에서 정치의 이상(異常)비대증을 치유하고 관료, 공공부문은 그 역할을 재조명하며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공직자라면 국가공동체 이익과 나의 이익이 충돌할 때는 내 이익을 버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적어도 공무원에게는 나라에 대한 사명감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국가주의,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넘어간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지만 공직자들의 위기를 예방하고 위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한국 과학계의 나눠 먹기 관행은 우리의 혁신 생태계를 약화시켜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R&D 자금을 투입했지만, 미래 최첨단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광범위하게 분산 투입함으로써 과학 기술 혁신 생태계를 침하시켜 왔습니다. 다른 선진국이 AI로, 퀀텀 컴퓨팅으로 선진 기술력을 가진 강국(强國)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에 한국의 연구소들은 정부의 R&D 자금을 따내는 데만 결사적이었습니다. 이런 관행이 오래 이어지면서 과학 기술 혁신 생태계는 점점 침하되기만 했습니다. 이 부문도 창조적 혁신의 대상입니다.”
― 정부 자금 지원 없이는 실험실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공대 교수들의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미국은 산학연(産學硏)이 하나입니다. 가령 보잉사(社) 밑에 어마어마한 연구소가 있고, 그 연구소가 대학에 기금을 지원해 혁신 기술을 만들어냅니다. 미국은 산학연이 철저하게 협업해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혁신성의 중심은 대학입니다. 그러나 한국 대학 교육 생태계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등록금 동결 후 정부가 연구보조비를 대주며 대신 학교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합니다. 이 결과 대학 교육과 대학 연구소는 모두 침체일로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 생태계를 바꾸지 않으면 과학 기술 혁신 생태계는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똑똑한 사회주의자’”
―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하버드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에 대한 지원 철회 및 유학생 비자 중단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미국의 혁신성을 저해시키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미국의 대학이 산학연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에서 우수한 두뇌들이 미국 대학에 몰려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학생 유입을 막겠다는 단순한 발상이 현실화된다면 여태 일궈온 미국의 혁신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겁니다.”
― 이런 것을 두고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표현하던데요.
“지난 10여 년간 의회 정치가 파탄 나면서 분열공화국이 됐고, 탈진한 민생 경제 문제를 내버려 두다시피 하다 보니 내수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윤석열 정부 때 야당이 주도한 국회는 당리당략적 이념적 법안만을 통과시켰고, 이러다 보니 윤석열 전 대통령은 거부권만 행사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습니다. 무력감이 증폭되면서 한국이 갖고 있던 고유의 역동성이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졌고 시장 세력들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졌습니다.”
― 차기 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합니까.
“외환위기 때의 김대중 전(前) 대통령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가계 부문의 탈진 현상에 긴급 수혈이 필요하지만, 경제 전반에 걸친 혁신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똑똑한 사회주의자’였다고 봅니다. 동교동계 강경파들을 뒷전으로 물리고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를 아는 관료 출신 등 프로페셔널 정책가들을 발탁했습니다. 경제 관료들이 ‘대통령이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나라의 경제가 큰일 난다’고 긴급 건의했더니 정책 태도를 완전히 바꿔 실사구시를 표방하며 시장주의자, 개방주의자가 됐고, 외국 자본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기업·금융·노동·공공 부문 등 4대 부문 개혁을 뚝심 있게 추진해 성공시켰습니다. 자기 신념에는 반할 수 있지만 그렇게 안 하면 국가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바꾸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이 잘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언제든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변화를 보였기에 관료들이 앞장서 시장 친화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후반기 들어 북한과의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개혁의 바람을 약화시켰던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주 4.5일제, 가계 수입 줄이게 될 것”
인터뷰를 위해 몇 차례 만난 정덕구 이사장은 굉장히 강단 있는 사람이다. ‘호랑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풀을 먹지 않는다’ ‘주군(主君)은 내가 선택한다’고 했고, ‘권력자 앞에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가계 부문의 수축 현상이 심화하고 가계 생태계는 심각하게 침하됐습니다. 가계 부문의 침하는 내수 경제의 심각한 침체를 가져왔고, 특히 자영업 등 유통업의 침체를 가져왔습니다. ‘송장 만지고 살인범 될 수 있다’는 우리 속담은 의사가 중환자에게 잘못 처방해 주사 한 번만 잘못 놓아도 죽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입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위중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념적 반(反)시장적 정책 실험은 자칫 경제를 위험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기업 생태계는 수출, 내수 양면에서 수축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기존 수출 주도 품목들은 경쟁자들의 출현으로 위축되고 최첨단 기술 발전의 지연으로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경제 하부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한국의 정치 난맥과 사회 갈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양발에 쇳덩이처럼 달고 가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송장 만지고 살인범 될 수 있다’는 속담을 되새겨야 합니다. 경제에 자칫 잘못 손을 댔다가 이미 망가진 경제 침체의 책임을 모조리 질 수 있습니다. 반면 이재명 정부가 이 기회를 반전시킨다면 또 한 번의 창조적 혁신 시대를 여는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경제 설계로 기본 소득, 4.5일제를 내세웠는데요.
“주(週) 4.5일제는 노동의 공급을 더욱 줄여 우리의 노동 생산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가계 수입을 줄이게 될 것입니다. 기본 소득, 기본 주택 구상은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대규모 재정 지출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근로 의욕을 약화시키고 노동의 한계 생산성을 저하해 잠재성장력을 저하할 우려가 있습니다. 서유럽 사회주의도 국민이 최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만 보장합니다. 그 미니멈 밸런스(minimum balance)는 지금 우리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문재인, 경제 발전에 逆流”
― 자본주의가 극도로 무르익으면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학에서 ‘소득이 올라가면 자기 욕구 체계가 상향된다’고 합니다. 소득 효과와 대체 효과라는 것입니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타인에게 지배받는 것을 싫어해서 저항하고 노조가 생기고, 노조가 정치화되면서 국가가 그리스처럼 쇠락의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일은 하기 싫은데 배는 불러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지키면서 국가는 계속 성장을 해야 한다’는 명제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현재 여러 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체제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동반 추락하고 있습니다. 고복지·고효율의 시대는 끝나고, 고복지·저효율로 가고 있습니다. 결국에 고복지를 해줄 능력이 없다 보니 다시 저복지 시대로, 비참한 경로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허한 헛된 꿈은 꾸지 말아야 합니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저녁이 있는 삶’을 기치로 내걸었죠.
“문재인 대통령은 고복지에 치중했는데, 반면 비용 개념은 취약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역류하면 오히려 빈곤한 사람들의 생존 비용을 더욱 커지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역사상에서 가장 발전의 흐름을 역류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학계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기치로 내걸고 반(反)시장적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경제의 역동성을 추락시켰고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하면서 노동 공급량을 떨어뜨렸습니다. 본인의 정책대로 밀어붙였는데 주택 가격이 올라가니까 통계 조작까지 서슴지 않으며 잘못된 정책을 옹호하면서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습니다. 신규 채용된 공무원을 앞에 두고 ‘국가보다 개개인의 인생이 소중하다’는 식으로 호도했습니다. 요즘의 트렌드에 맞춰 워라밸을 강조한 대통령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세금으로 공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공무원에게는 적절치 않은 처사였습니다. 우리 국민을 일하기 싫어 하는 국민으로 만들었고, 한국 문제군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우리가 선진도상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높은 가계 소득을 올리고 혁신 DNA를 살려 대혁신 운동을 해야 합니다. 수축하고 있는 가계 부문의 회생은 일을 원하는 만큼 하게 하고 소득을 늘려야 가능합니다.”
“문재인을 답습하는 것은 죽는 길”
―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거네요.
“이재명 정부는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의 균형점을 찾는 것을 국정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는 기독교적 노동관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킨다’(헌법 10조)라는 가치 설정 사이에서 둘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은 오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두 개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국가 사회의 지속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서구라파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여준 현상입니다. 인간이 지나치게 존엄성 중시에 빠지면 국가 사회의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뒷받침하려면 국가 사회의 생산성이 그만큼 올라가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혁신, 창조적 혁신, 기득권 폐기를 위한 개혁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형 균형점은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의 균형을 위한 끊임없는 자기 혁신입니다. 이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현대 민주정치와 자본주의 경제의 공동 목표가 됐습니다. 문제는 국가공동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끊임없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유럽의 경우 생산성 향상보다 훨씬 초과하여 사회안전망 지출이 늘어나면서 복지병 환자로 서서히 내려앉으며 세계 강대국 대열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허덕인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답습하는 것은 죽는 길이고 김대중 정부를 벤치마킹하면 성공한 정부로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진도상국”
― 우리는 선진국입니까, 선진도상국입니까.
“저는 우리가 아직은 선진도상국이라고 봅니다. 선진국에 해당하는 객관적 조건은 충족했습니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었고, 세계은행에서 정의하는 고소득 OECD 국가군(群)입니다. 개발원조위원회(DAC), 파리클럽 회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룬 성취는 눈부십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150여 개 제3세계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 혁명에 성공했습니다. 식민 상태에서 자유국가, 후진국에서 선진국, 빈국(貧國)에서 부국(富國)이 됐습니다. 2024년 초 기준으로 한국무역협회, 세계은행, OECD 보고서 등이 말한 바로는 우리의 세계 순위는 정보력 3위, 과학기술력 4위, 국방력 5위, 세계문화영향력과 소프트파워 6위, 기업가정신지수 8위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한 종합 국력은 9위(중국, 인도 제외)입니다. 하지만 부정 지표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OECD 1위, 사회갈등지수 3위, 국민행복지수 25위, 정부갈등관리능력 27위, 글로벌포용성 지수는 꼴찌(36개국 중 36등)입니다.”
― 겉은 그럴싸한데 속은 곪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압축 근대화가 불러온 비용과 부작용입니다. 갑자기 다가온 성취 뒤에 허영, 천박성이 생기고 황금 만능주의 사상이 만연하면서 국가가, 국민이 품격을 상실했습니다. 문화적 허영에 빠져 있고,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며, 정치적으로 팬덤화되고, 여론은 경망스럽고, 수치심은 소멸했습니다. 한마디로 고속 성장으로 경제력의 근육은 단단해졌는데 영혼의 근육은 크게 야위어 있습니다. 공동체와 개체의 관계 방정식은 와해하고 있습니다. 이념, 계층, 세대, 젠더, 교육, 노사, 지역 갈등이 도사린 ‘갈등 선진국’입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보이는 것은 압축 근대화, 고도화에 의한 착시 현상일 뿐입니다. 정치, 가계, 사회, 인구, 교육, 언론 생태계는 침하를 넘어 안 좋은 상태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파괴가 없다면 건강한 생태계로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대규모 과학 기술 산업 구조 조정 들어가야”

―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군요.
“과학 기술 부문의 관행에 대해 그들의 노력을 저평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과학 기술 발전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빠른 것이 현실인데, 한국의 교육 생태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처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술 진보를 잘 따라가서 성공한 창조적 소수에 비해 따라가지 못하는 비창조적 다수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창조적 소수를 다수로 확장시키려면 교육 생태계 전반을 혁신하고 창조적으로 파괴해서 신기술 창조 인력을 충분히 공급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그럴 생각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학부형들의 자각이 절실합니다.”
― 이재명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천명했는데,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탈진 상태에 빠진 가계 부문을 살려야 합니다. 가계 생태계는 자산, 부채, 수입, 비용, 미래 안심 설계(연금)의 다이아몬드형으로 구성돼 있는데 4개의 축 모두가 수축하고 있습니다. 가계의 수입은 일자리 부족 주 52시간제, AI 등 자동화로 인해 줄어들고, 가계 비용은 주택 가격 급상승으로 인한 주거비 증가, 사교육비 증가, 폭력적 재산세로 늘고 있습니다. 가계의 자산은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보니 이와 연계한 부채가 과다하게 늘고, 연금기금 고갈, 개인 파산자 속출 등으로 미래에 대한 안심 설계는 크게 미흡합니다. 가계 생태계를 통합, 연계, 순환 체계의 문제로 접근해 온갖 힘을 기울여 살려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가계 부문을 회생시키려면 기업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창출돼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지난 10년을 되찾는 구조 조정의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대규모 과학 기술 산업에 대한 구조 조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실패한 사람을 우대하는 좌파 정부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을 우대하는 좌파 정부’로 철저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살릴 것은 살리고, 도태돼야 하는 것은 과감하게 도태시켜 실사구시적인 혁신 마인드로 생산성 없는 산업과 기업을 구조 조정해 경제를 회생시켜야 합니다. 이념적 선택은 큰 비용을 수반합니다. 그리고 상상적 정책을 함부로 실험해서는 안 됩니다. 정책은 한 번 시도했다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효과가 검증된 정책을 시행해야 하고 위기 시에는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를 아는 프로페셔널들이 조종간을 잡아야 합니다. 기업이 왜 해외로 빠져나가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잃어버린 10년’이 15년으로 연장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기가 될 수 있도록 진력해야 합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형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우리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파들은 여전히 우리가 박정희식 개발 모형을 따라 시장을 중시하며 높은 생산성이 확보되는 시대로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좌파들은 박정희식 산업화 전략으로 인해 양극화가 생겼기에 사회 저소득층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파와 좌파의 사고 모두 전 근대적인 사고에 불과합니다. 전형적인 선진도상국 증후군입니다. 이제 좌우 이념을 뛰어넘어 미래의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는 철저하게 시장 경제를 따르면서 사회안전망과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과학 기술 산업 구조 혁신을 통해 잠재성장력을 다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를 잘 성공적으로 추진하면 대한민국은 지속 가능한 세계 주류 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겁니다.”
― 6월 24일 개최되는 NEAR 경제포럼의 주제가 ‘또 한 번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장력과 역동성 회복’인데 어디에 역점을 두시나요.
“지금 한국 경제의 현실은 생태계적 침하로 경제 하부 구조가 흔들리는 중대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성장력과 역동성이 함께 약화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 환경은 수십 년 만에 닥쳐오는 초보호 무역 시대로 진입하며 조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형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응할 정치, 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은 바닥에 이르고 위기 관리에 대응할 정책 관료들은 오랜 정치 파동 속에서 도전 정신과 사명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전체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가계 부문은 극도로 탈진 상태에 이르고 기업 도산 속에 일자리는 줄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공유해야 할 때입니다. 6월 24일에 열리는 NEAR 경제포럼에서는 성장력 회복, 민생·가계 부문의 회생, 경제·사회 역동성의 회복을 위한 경제 석학들의 탁월한 제안이 있고 열렬한 토론이 있을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 경제팀에 대한 조언도 뒤따를 것입니다.”⊙
⊙ “생태계적 침하로 경제 하부 구조 흔들리는 중대 상황”
⊙ “창조적 혁신 없으면 잠재성장률 0%대, 결국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것”
⊙ “세종시 이전으로 공무원의 빈자리를 국회의원 보좌관이 차지”
⊙ “IMF 때의 김대중 대통령 벤치마킹해 親시장주의 정책 펼쳐야”
⊙ “일은 덜하면서 고임금 받고 국가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헛된 꿈”
⊙ “최우선 과제는 탈진한 가계 부문을 인공호흡해서 살리는 것”
⊙ “집권 초기 과도한 정책 실험은 부작용 커”
월간조선 2025년 7월호 기사 원문
“한국 경제는 박근혜 정부 후반 이후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쳐 윤석열 정부 3년으로 이어지며 잃어버린 10년의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진영 논리로 지도자를 뽑았고, 이렇게 뽑힌 대통령은 두 나라의 한쪽 대통령이 되어 진영의 이익만 추구하며 그것이 국익(國益)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언가 5%가 부족한 대통령들이 계속 등장하며 한국 문제군을 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이 극단화되는 상황에서 등장한 이재명 정부의 5년은 정치적·경제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성장력과 역동성을 살릴 것인지 더 악화시킬 것인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5년이 될 것입니다.”
정덕구(鄭德龜) 니어재단 이사장이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정 이사장의 말이 무게감을 갖는 이유는 그가 외환위기 환란 속에서 대(對) IMF 협상 뉴욕외채협상 수석대표를 맡아 한국 경제의 속살을 면밀하게 들여다봤고, 지난 20여 년 동안 독립 싱크탱크 기관의 수장으로 동북아 및 경제 연구에 매진해 왔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이사장은 2004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돌연 사임하고,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NEAR·North-East Asia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해 20년간 정치권 외곽에서 활동했다.
“중국 특수 사라지며 ‘피크 코리아’ 우려”
―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입니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전반부까지 10여 년 동안 우리는 ‘중국 특수(特需)’라는 마취제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국가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 노동과 자본, 총 요소 생산성이 약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가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적한 ‘한국 문제군’이 축적된 시기였습니다. 정치, 정액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좌우(左右) 이념 대립은 격렬해졌습니다. 2015년 이후 중국 특수가 사라지고 중국과는 격렬한 경쟁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한국은 방대한 재원(財源)을 기술 개발에 투입했지만, 전략적 집중 투자보다 각 분야에 걸쳐 나누어 먹기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10년’의 씨앗이 됐습니다. 이 결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점차 낮아졌죠. 이 기간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착실히 실행해 상당한 수준의 성공을 이뤘습니다. 시야가 넓고 통합의 리더십이 출중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대통령보다는 진영 싸움에 몰두하며 나라를 두 나라 현상의 분열공화국으로 이끌었던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통한의 10년이었습니다.”
―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성장력 지속 감소, 역동성 감퇴 때문입니다. 성장력이 감소하는 이유는 경제 부문의 혁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구 생태계의 침하로 인구 감소에 의한 노동 공급 감소, 이에 따른 소비 증가율 감소도 중대한 요인입니다. 미국이 일명 ‘매그니피센트 7(애플·아마존·MS·메타·알파벳·테슬라·엔비디아)’ 빅테크 기업을 앞세워 디지털 부문에서 신(新)기술을 만들고, 중국이 ‘제조 2025’를 기반으로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 주도권 확보에 매진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잠잠했습니다. 이 결과 한국의 수출 상품 구성은 같은 기간 중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먹거리였던 반도체는 인공지능 칩 선두주자인 엔비디아,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와 비교당하면서 성장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계(家計) 부문에서 일부 탈진 현상이 보이고 민간 소비 지출이 급감하는 현상을 보고 국민은 ‘이것이 피크 코리아 현상이 아닌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돈 풀었지만 마중물 역할 못해”
― 세계가 치고 나가는 사이에 오히려 우리는 후퇴했군요.
“성장력 감소의 두 번째 요인은 코로나19 이후에 목도한 자영업의 몰락입니다. 지금 민생 피폐의 모습을 보면 특히 코로나19 기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자영업의 몰락 현장이 아른거립니다. 코로나19 확산 기간 3년 동안 가계 부문의 수축 현상이 본격화됐습니다. 최근 3년간 재정 운영에 대한 가치적 대립으로 적기에 재정 투입이 되지 않아 소상공인과 저소득 가계 부문은 탈진(脫盡) 상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자영업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구조 조정을 당한 고급 노동자들에 의해 우후죽순 확대됐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미국은 코로나19 때 재정 적자(赤字)를 감수하면서 일시적으로 문 닫은 자영업자들에게 비교적 큰 자금을 쏟아부으며 경제가 리바이벌(revival)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만들어줬고, 이 결과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민간 소비가 살아났습니다.”
―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때 엄청나게 재정을 풀지 않았습니까.
“전(全) 국민에게 ‘소고기 사 먹으라’며 무차별적으로 돈을 살포했는데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재정을 제대로 풀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모든 국민이 아니라 죽어가는 자영업자에게 집중해서 돈을 풀었어야 합니다. 뒤이어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무조건 문재인 정부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겠다’며 재정건전성 확보를 주요 정책 기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국가 부채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소상공인, 자영업자, 유통 부문이 빈사(瀕死) 상태에 빠지며 경제 생태계를 침하시켰습니다.”
“단기 처방부터 시작해야”
― 경제 생태계가 무너진 겁니까.
“생태계는 생성, 성장, 소멸, 재생성이 이어지는 순환 구조로 경제도 마찬가지의 사이클로 움직입니다. 경제 정책의 영역을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해서 보면 경제 내부에 존재하는 생태계적 병리(病理) 현상이 보입니다. ‘생태계 병리 현상을 얼마나 조기에 치유하느냐’에 따라 생태계의 건강성이 좌우됩니다. 이 생태계 침하 과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노무현 정부 때 감기에 걸렸는데 치유 없이 넘겨서 이명박 정부 때 폐렴이 되고, 박근혜 정부 때 폐암이 되고, 다시 문재인 정부 때 폐암 말기로 번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온몸으로 전이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계마다 적기 시정 조치 없이 정쟁에만 몰두하다 병이 깊어져 더는 힘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 제 평가입니다. 경제 내부의 병리 현상을 점의 단계 또는 면의 단계에서 미리 찾아내 처방하면 암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병리 현상이 온몸에 번지고 나면 경제 전반의 하부 구조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것이 경제 생태계 침하 현상입니다. 경제 생태계는 내부에 있는 가계 생태계, 기업 생태계와 외부에 둘러싸고 있는 정치 생태계, 사회 생태계, 그리고 교육 생태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 이것은 경제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까.
“급속한 성장력 저하, 역동성 퇴조의 문제 같은 것을 가져온 우리 경제의 하부 구조 생태계 침하 현상은 오랜 세월 농축되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이 얽힌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잠재성장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문제는 우리의 노동 자본 투입 산출 구조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가계 생태계의 사각형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수축 현상은 구조적 문제로서 단시간 내에 치유할 수 없는 중한 병입니다. 그러나 처방은 단기 처방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재정자금 투입으로 생계 보전을 한다든지, 가계 부채를 유예한다든지,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 등을 먼저 펴면서 기업의 일자리 창출 역량을 지원하는 정책을 같이 시행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정치 생태계와 인물 생태계의 파괴 침하 현상 같은 것은 개헌을 통해 5년 단임 정부가 가진 한계를 극복해야 해결 가능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씩 떨어진다’
― 경제 하부 구조가 침하됐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경제를 둘러싼 기초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노동 공급의 축소로 인한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투자 여건 악화와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자본의 한계 효율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를 둘러싼 하부 구조, 즉 생태계가 침하되는데도 이를 오래 내버려 두고 혁신과 개혁을 게을리함에 따라 잠재성장력의 중요한 요소인 총 요소생산성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는 가까운 기간 내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 수준의 잠재성장력인 0.3~0.5% 정도로 추락하고, 이것이 오래가면 일본형 장기 침체의 길인 잠재성장률 0%로 빠져들 것입니다. 일부 전망에 따르면 우리의 잠재성장력이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0%대로 예측하며 제로 성장이 가시화됐습니다.
“성장률 감퇴는 굉장히 오래된 문제로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씩 떨어진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력과 역동성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한동안 무(無)정부 상태가 혼재되어 가속화가 심화했습니다.”
“재벌, 자기 혁신 부족 인정해야”
정덕구 이사장의 ‘마이너스 성장론’은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준다. 정 이사장의 얘기가 이어졌다.
“재벌 기업에 대한 긍정, 부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재벌은 우리나라 GDP의 40%를 차지하는 중요 섹터입니다. 그들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 요인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술 진보 전쟁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점프하고, 정보화 사회를 리드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소, 중견 기업들이 많이 육성되기도 했습니다. 중소기업만 고군분투했다면 오늘날의 성과를 이뤄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문제는 재벌 3, 4세로 넘어가면서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운 재벌이 많고, 이로 인한 체제의 한계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미국의 ‘매그니피센트 7’이나 대만의 TSMC, 중국 정부의 혁신 드라이브에 맞서 경쟁하는 데 점점 속도감 있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 재벌 기업의 혁신이 부족했을까요.
“재벌 총수가 10년 가까이 재판에 불려 다니고, 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상속세 등의 고충을 겪고 있으니 쉽사리 혁신에 매진하지 못했다는 자기변명도 일부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핵심 재벌 기업들의 자기 혁신이 부족했던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 회생 대책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정책 공무원의 역할 부재도 한국 경제가 부정적인 상황에 부딪히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가요.
“박정희 대통령 때는 관료가 제도를 새로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며 경제 각 부문으로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지금은 관료가 후선에서 항상 시장을 주시하고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조기경보를 내리고 직접 개입이 필요할 때 적기 시정 조치에 나섭니다. 이것은 정책 관료들의 의무입니다. 한데 이러한 의무를 수행할 정책 관료들이 시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세종시에 유폐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병리 현상이 발견되면 이를 긴급 치유해야 하는데, 국회는 다수당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법안만을 다루려 합니다. 정치 생태계가 스스로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처참합니다.”
‘보좌관 전성시대’
― 어떻게요.
“첫째, 국가 권위 체계가 붕괴하고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하락해, 국가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이 극도로 저하됐습니다. 국회, 행정부, 법원, 언론 등 공공부문 전반에 걸쳐 무력감이 확산했습니다. 둘째, 공공부문의 생산성이 정체됐습니다. 세종시로의 이전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제는 더는 정책 공무원의 헌신과 희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세종시에 유폐됐다고 표현하시네요.
“경제 관료들의 손발을 묶었으니까요. 이런 면에서 세종시 이전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고 봅니다. 일부 지방 이전 효과는 있겠지만, 그들이 시장에서 멀어짐으로써 정책 관료들의 긴장과 예민한 정책의 촉을 소멸시켰습니다. 공무원 수천 명이 세종시에 내려간 것으로 지방 균형이 이뤄졌습니까?
공무원의 빈자리를 국회의원 보좌관이 차지했습니다. 지난 10년은 보좌관들이 많은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보좌관 전성시대’였습니다. 세종시의 공무원은 처음에 상실감에 빠졌다가 이제는 안락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세종시의 아파트 값이 오르고 아이들 학교가 좋은데 불만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박정희식(式) 개발 모형은 정치와 관료, 재벌의 삼각 영합 구조 속에서 상호 견제하는 구조였습니다. 한 축을 담당했던 관료 사회가 무너지다 보니 정치와 재벌이 직접 교류했고 신종(新種) 정경 유착이 시작됐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고위공무원들이 관직을 버리고 민간 기업에 둥지를 트는 것이 소망이고 보편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젊은 공무원들이 투철한 국가관보다 가족의 안위를 더 중시하며 그들의 꿈이 개인화되고 있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는 공공부문 인물 생태계의 병리 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공공부문의, 특히 정치권의 인물 생태계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합니다. 팬덤, 패거리 정치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 보니 훌륭한 인물이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産學硏 하나”
― 공공부문이 바뀌어야 하는군요.
“공공부문에 대한 대혁신 운동이 필요합니다. 국정에서 정치의 이상(異常)비대증을 치유하고 관료, 공공부문은 그 역할을 재조명하며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공직자라면 국가공동체 이익과 나의 이익이 충돌할 때는 내 이익을 버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적어도 공무원에게는 나라에 대한 사명감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국가주의,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넘어간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지만 공직자들의 위기를 예방하고 위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한국 과학계의 나눠 먹기 관행은 우리의 혁신 생태계를 약화시켜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R&D 자금을 투입했지만, 미래 최첨단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광범위하게 분산 투입함으로써 과학 기술 혁신 생태계를 침하시켜 왔습니다. 다른 선진국이 AI로, 퀀텀 컴퓨팅으로 선진 기술력을 가진 강국(强國)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에 한국의 연구소들은 정부의 R&D 자금을 따내는 데만 결사적이었습니다. 이런 관행이 오래 이어지면서 과학 기술 혁신 생태계는 점점 침하되기만 했습니다. 이 부문도 창조적 혁신의 대상입니다.”
― 정부 자금 지원 없이는 실험실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공대 교수들의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미국은 산학연(産學硏)이 하나입니다. 가령 보잉사(社) 밑에 어마어마한 연구소가 있고, 그 연구소가 대학에 기금을 지원해 혁신 기술을 만들어냅니다. 미국은 산학연이 철저하게 협업해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혁신성의 중심은 대학입니다. 그러나 한국 대학 교육 생태계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등록금 동결 후 정부가 연구보조비를 대주며 대신 학교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합니다. 이 결과 대학 교육과 대학 연구소는 모두 침체일로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 생태계를 바꾸지 않으면 과학 기술 혁신 생태계는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똑똑한 사회주의자’”
―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하버드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에 대한 지원 철회 및 유학생 비자 중단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미국의 혁신성을 저해시키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미국의 대학이 산학연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에서 우수한 두뇌들이 미국 대학에 몰려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학생 유입을 막겠다는 단순한 발상이 현실화된다면 여태 일궈온 미국의 혁신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겁니다.”
― 이런 것을 두고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표현하던데요.
“지난 10여 년간 의회 정치가 파탄 나면서 분열공화국이 됐고, 탈진한 민생 경제 문제를 내버려 두다시피 하다 보니 내수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윤석열 정부 때 야당이 주도한 국회는 당리당략적 이념적 법안만을 통과시켰고, 이러다 보니 윤석열 전 대통령은 거부권만 행사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습니다. 무력감이 증폭되면서 한국이 갖고 있던 고유의 역동성이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졌고 시장 세력들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졌습니다.”
― 차기 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합니까.
“외환위기 때의 김대중 전(前) 대통령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가계 부문의 탈진 현상에 긴급 수혈이 필요하지만, 경제 전반에 걸친 혁신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똑똑한 사회주의자’였다고 봅니다. 동교동계 강경파들을 뒷전으로 물리고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를 아는 관료 출신 등 프로페셔널 정책가들을 발탁했습니다. 경제 관료들이 ‘대통령이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나라의 경제가 큰일 난다’고 긴급 건의했더니 정책 태도를 완전히 바꿔 실사구시를 표방하며 시장주의자, 개방주의자가 됐고, 외국 자본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기업·금융·노동·공공 부문 등 4대 부문 개혁을 뚝심 있게 추진해 성공시켰습니다. 자기 신념에는 반할 수 있지만 그렇게 안 하면 국가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바꾸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이 잘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언제든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변화를 보였기에 관료들이 앞장서 시장 친화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후반기 들어 북한과의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개혁의 바람을 약화시켰던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주 4.5일제, 가계 수입 줄이게 될 것”
인터뷰를 위해 몇 차례 만난 정덕구 이사장은 굉장히 강단 있는 사람이다. ‘호랑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풀을 먹지 않는다’ ‘주군(主君)은 내가 선택한다’고 했고, ‘권력자 앞에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 경제는 가계 부문의 수축 현상이 심화하고 가계 생태계는 심각하게 침하됐습니다. 가계 부문의 침하는 내수 경제의 심각한 침체를 가져왔고, 특히 자영업 등 유통업의 침체를 가져왔습니다. ‘송장 만지고 살인범 될 수 있다’는 우리 속담은 의사가 중환자에게 잘못 처방해 주사 한 번만 잘못 놓아도 죽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입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위중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념적 반(反)시장적 정책 실험은 자칫 경제를 위험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기업 생태계는 수출, 내수 양면에서 수축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기존 수출 주도 품목들은 경쟁자들의 출현으로 위축되고 최첨단 기술 발전의 지연으로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경제 하부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한국의 정치 난맥과 사회 갈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양발에 쇳덩이처럼 달고 가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송장 만지고 살인범 될 수 있다’는 속담을 되새겨야 합니다. 경제에 자칫 잘못 손을 댔다가 이미 망가진 경제 침체의 책임을 모조리 질 수 있습니다. 반면 이재명 정부가 이 기회를 반전시킨다면 또 한 번의 창조적 혁신 시대를 여는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경제 설계로 기본 소득, 4.5일제를 내세웠는데요.
“주(週) 4.5일제는 노동의 공급을 더욱 줄여 우리의 노동 생산성을 더욱 약화시키고 가계 수입을 줄이게 될 것입니다. 기본 소득, 기본 주택 구상은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대규모 재정 지출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근로 의욕을 약화시키고 노동의 한계 생산성을 저하해 잠재성장력을 저하할 우려가 있습니다. 서유럽 사회주의도 국민이 최소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만 보장합니다. 그 미니멈 밸런스(minimum balance)는 지금 우리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문재인, 경제 발전에 逆流”
― 자본주의가 극도로 무르익으면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학에서 ‘소득이 올라가면 자기 욕구 체계가 상향된다’고 합니다. 소득 효과와 대체 효과라는 것입니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타인에게 지배받는 것을 싫어해서 저항하고 노조가 생기고, 노조가 정치화되면서 국가가 그리스처럼 쇠락의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일은 하기 싫은데 배는 불러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지키면서 국가는 계속 성장을 해야 한다’는 명제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현재 여러 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체제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동반 추락하고 있습니다. 고복지·고효율의 시대는 끝나고, 고복지·저효율로 가고 있습니다. 결국에 고복지를 해줄 능력이 없다 보니 다시 저복지 시대로, 비참한 경로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허한 헛된 꿈은 꾸지 말아야 합니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저녁이 있는 삶’을 기치로 내걸었죠.
“문재인 대통령은 고복지에 치중했는데, 반면 비용 개념은 취약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역류하면 오히려 빈곤한 사람들의 생존 비용을 더욱 커지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역사상에서 가장 발전의 흐름을 역류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학계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기치로 내걸고 반(反)시장적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경제의 역동성을 추락시켰고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하면서 노동 공급량을 떨어뜨렸습니다. 본인의 정책대로 밀어붙였는데 주택 가격이 올라가니까 통계 조작까지 서슴지 않으며 잘못된 정책을 옹호하면서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습니다. 신규 채용된 공무원을 앞에 두고 ‘국가보다 개개인의 인생이 소중하다’는 식으로 호도했습니다. 요즘의 트렌드에 맞춰 워라밸을 강조한 대통령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세금으로 공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공무원에게는 적절치 않은 처사였습니다. 우리 국민을 일하기 싫어 하는 국민으로 만들었고, 한국 문제군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우리가 선진도상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높은 가계 소득을 올리고 혁신 DNA를 살려 대혁신 운동을 해야 합니다. 수축하고 있는 가계 부문의 회생은 일을 원하는 만큼 하게 하고 소득을 늘려야 가능합니다.”
“문재인을 답습하는 것은 죽는 길”
―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거네요.
“이재명 정부는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의 균형점을 찾는 것을 국정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는 기독교적 노동관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킨다’(헌법 10조)라는 가치 설정 사이에서 둘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은 오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두 개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국가 사회의 지속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서구라파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여준 현상입니다. 인간이 지나치게 존엄성 중시에 빠지면 국가 사회의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뒷받침하려면 국가 사회의 생산성이 그만큼 올라가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혁신, 창조적 혁신, 기득권 폐기를 위한 개혁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형 균형점은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의 균형을 위한 끊임없는 자기 혁신입니다. 이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현대 민주정치와 자본주의 경제의 공동 목표가 됐습니다. 문제는 국가공동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끊임없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유럽의 경우 생산성 향상보다 훨씬 초과하여 사회안전망 지출이 늘어나면서 복지병 환자로 서서히 내려앉으며 세계 강대국 대열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허덕인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답습하는 것은 죽는 길이고 김대중 정부를 벤치마킹하면 성공한 정부로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진도상국”
― 우리는 선진국입니까, 선진도상국입니까.
“저는 우리가 아직은 선진도상국이라고 봅니다. 선진국에 해당하는 객관적 조건은 충족했습니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었고, 세계은행에서 정의하는 고소득 OECD 국가군(群)입니다. 개발원조위원회(DAC), 파리클럽 회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룬 성취는 눈부십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150여 개 제3세계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 혁명에 성공했습니다. 식민 상태에서 자유국가, 후진국에서 선진국, 빈국(貧國)에서 부국(富國)이 됐습니다. 2024년 초 기준으로 한국무역협회, 세계은행, OECD 보고서 등이 말한 바로는 우리의 세계 순위는 정보력 3위, 과학기술력 4위, 국방력 5위, 세계문화영향력과 소프트파워 6위, 기업가정신지수 8위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합한 종합 국력은 9위(중국, 인도 제외)입니다. 하지만 부정 지표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OECD 1위, 사회갈등지수 3위, 국민행복지수 25위, 정부갈등관리능력 27위, 글로벌포용성 지수는 꼴찌(36개국 중 36등)입니다.”
― 겉은 그럴싸한데 속은 곪아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압축 근대화가 불러온 비용과 부작용입니다. 갑자기 다가온 성취 뒤에 허영, 천박성이 생기고 황금 만능주의 사상이 만연하면서 국가가, 국민이 품격을 상실했습니다. 문화적 허영에 빠져 있고,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며, 정치적으로 팬덤화되고, 여론은 경망스럽고, 수치심은 소멸했습니다. 한마디로 고속 성장으로 경제력의 근육은 단단해졌는데 영혼의 근육은 크게 야위어 있습니다. 공동체와 개체의 관계 방정식은 와해하고 있습니다. 이념, 계층, 세대, 젠더, 교육, 노사, 지역 갈등이 도사린 ‘갈등 선진국’입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보이는 것은 압축 근대화, 고도화에 의한 착시 현상일 뿐입니다. 정치, 가계, 사회, 인구, 교육, 언론 생태계는 침하를 넘어 안 좋은 상태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파괴가 없다면 건강한 생태계로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대규모 과학 기술 산업 구조 조정 들어가야”
―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군요.
“과학 기술 부문의 관행에 대해 그들의 노력을 저평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과학 기술 발전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빠른 것이 현실인데, 한국의 교육 생태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처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술 진보를 잘 따라가서 성공한 창조적 소수에 비해 따라가지 못하는 비창조적 다수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창조적 소수를 다수로 확장시키려면 교육 생태계 전반을 혁신하고 창조적으로 파괴해서 신기술 창조 인력을 충분히 공급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그럴 생각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학부형들의 자각이 절실합니다.”
― 이재명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천명했는데,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탈진 상태에 빠진 가계 부문을 살려야 합니다. 가계 생태계는 자산, 부채, 수입, 비용, 미래 안심 설계(연금)의 다이아몬드형으로 구성돼 있는데 4개의 축 모두가 수축하고 있습니다. 가계의 수입은 일자리 부족 주 52시간제, AI 등 자동화로 인해 줄어들고, 가계 비용은 주택 가격 급상승으로 인한 주거비 증가, 사교육비 증가, 폭력적 재산세로 늘고 있습니다. 가계의 자산은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보니 이와 연계한 부채가 과다하게 늘고, 연금기금 고갈, 개인 파산자 속출 등으로 미래에 대한 안심 설계는 크게 미흡합니다. 가계 생태계를 통합, 연계, 순환 체계의 문제로 접근해 온갖 힘을 기울여 살려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가계 부문을 회생시키려면 기업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창출돼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지난 10년을 되찾는 구조 조정의 기간이 되어야 합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대규모 과학 기술 산업에 대한 구조 조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실패한 사람을 우대하는 좌파 정부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을 우대하는 좌파 정부’로 철저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살릴 것은 살리고, 도태돼야 하는 것은 과감하게 도태시켜 실사구시적인 혁신 마인드로 생산성 없는 산업과 기업을 구조 조정해 경제를 회생시켜야 합니다. 이념적 선택은 큰 비용을 수반합니다. 그리고 상상적 정책을 함부로 실험해서는 안 됩니다. 정책은 한 번 시도했다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효과가 검증된 정책을 시행해야 하고 위기 시에는 어디에 지뢰가 묻혀 있는지를 아는 프로페셔널들이 조종간을 잡아야 합니다. 기업이 왜 해외로 빠져나가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잃어버린 10년’이 15년으로 연장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기가 될 수 있도록 진력해야 합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형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우리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파들은 여전히 우리가 박정희식 개발 모형을 따라 시장을 중시하며 높은 생산성이 확보되는 시대로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좌파들은 박정희식 산업화 전략으로 인해 양극화가 생겼기에 사회 저소득층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파와 좌파의 사고 모두 전 근대적인 사고에 불과합니다. 전형적인 선진도상국 증후군입니다. 이제 좌우 이념을 뛰어넘어 미래의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는 철저하게 시장 경제를 따르면서 사회안전망과의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과학 기술 산업 구조 혁신을 통해 잠재성장력을 다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를 잘 성공적으로 추진하면 대한민국은 지속 가능한 세계 주류 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겁니다.”
― 6월 24일 개최되는 NEAR 경제포럼의 주제가 ‘또 한 번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장력과 역동성 회복’인데 어디에 역점을 두시나요.
“지금 한국 경제의 현실은 생태계적 침하로 경제 하부 구조가 흔들리는 중대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성장력과 역동성이 함께 약화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 환경은 수십 년 만에 닥쳐오는 초보호 무역 시대로 진입하며 조악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 형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응할 정치, 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은 바닥에 이르고 위기 관리에 대응할 정책 관료들은 오랜 정치 파동 속에서 도전 정신과 사명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공공부문 전체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가계 부문은 극도로 탈진 상태에 이르고 기업 도산 속에 일자리는 줄고 있습니다. 이제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공유해야 할 때입니다. 6월 24일에 열리는 NEAR 경제포럼에서는 성장력 회복, 민생·가계 부문의 회생, 경제·사회 역동성의 회복을 위한 경제 석학들의 탁월한 제안이 있고 열렬한 토론이 있을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 경제팀에 대한 조언도 뒤따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