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출판


[한국경제 출판]외환위기 징비록: 역사는 반복되는가(2008)


도서 구매하기 CLICK


도서 정보

저자: 정덕구

출판사: 삼성경제연구소

출판일: 2008년 6월 10일

ISBN: 9788976333742


도서 소개 

긴박하고 치열했던 IMF협상 과정 속에서 배우는 교훈!

이 책은 온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던 외환위기 10년을 되돌아보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그런 다음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국가 위기에 대비할 것을 당부한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리하고,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본다.

저자가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린 외환위기 초기부터 협상 및 극복과정에서 온 몸으로 겪은 경험에 대한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1부에서는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자금 지원을 요청하기까지 일어났던 숨 막히는 상황들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남산 힐튼 호텔에서 IMF 실무협상단과 벌였던 피 말리는 협상 장면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3부에서는 2선자금 조기도입을 위한 IMF 플러스 협상을, 4부에서는 외국 금융기관들과 외채의 만기연장 조건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했던 상황을 설명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뉴머리를 조달하기 위해 선진국 및 국제 금융기구와 벌인 협상을 살펴보고, IMF가 요구한 고금리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명한다. 


[이 책의 독서 포인트!]

저자는 위기의 요소는 항상 우리 곁에 있고, 경제위기는 경제사회의 체질과 위기 예방능력이 약한 나라에서 반복하여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 요직에 있으면서 느낀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환과 향후 닥쳐올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 경제사의 어두운 한 단면을 들춰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 속 용어 뜻풀이! - '징비록'이란?]

유성룡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저술에서 유래.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제해권 장악에 대한 정황 등이 상세히 기록. '징비'의 원래 뜻인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 내포.


목차

프롤로그

제1부 한국 경제의 위기와 IMF행 결정

01 1997년 위기, 탈출구는 없었다.

1. 위기는 소리 없이 오지 않는다

2.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되다

3. 벼랑 끝까지 내몰린 외환위기

4. 마지막 카드마저 실패하다

02. 결국 IMF행을 공식화하다

1. 위기 중에 조타수가 바뀌다

2. 새로운 경제팀의 불안한 시작

3.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다

4. 실패한 과거를 반추하다


제2부 IMF 자금지원조건을 위한 힐튼협상

03 3일간의 기초 협상이 시작되다

1. 드디어 협상의 돛이 오르다

2. 금융위기의 실태를 파헤치다

3. 부실 종금사가 쟁점으로 부각되다

4. IMF 구제금융 이후를 점검하다

04 힐튼에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다

1. 본격 협상의 전초전이 마련되다

2. 협상이 급물살을 타다

3. 1차 합의서 초안이 제시되다

4.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되다

05 막판 협상이 진통을 겪다

1. 경제주권을 잃은 패잔병의 설움

2. 무궁화홀에서의 피 말리는 막판 협상

3. 굴욕으로 얻어낸 협상 타결

4. 그래도 회한은 남는다


제3부 2선자금 조기도입을 위한 IMF 플러스협상

06 아직 끝나지 않은 IMF 협상

1. 기대를 저버린 IMF 구제금융

2. 위기를 가속화하는 정치권

3. 다시 바람 앞에 선 촛불이 되다

07 IMF 플러스협상으로 위기를 넘기다

1. 다시 IMF 플러스협상에 나서다

2. IMF 플러스협상 타결과 성탄 선물

3. IMF 플러스협상에 대한 감회


제4부 단기외채 만기연장을 위한 뉴욕협상

08 외채협상의 전략을 마련하다

1. 외채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다

2. 외채협상을 둘러싼 JP모건의 야심

3. 철저한 사전준비를 하다

4. 뉴욕에서 사전교섭을 벌이다

09 뉴욕외채협상이 타결되다

1.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1차 협상

2. 밀고 당기는 2~4차 협상

3. 5차 협상, 그리고 타결

10 외채 만기연장 설명회를 열다

1. 뉴욕외채협상의 영향과 의미

2. 전 세계 채권자를 설득하라

3. 전 세계가 놀란 외채 만기연장 대성공


제5부 뉴머니 조달과 고금리협상

11 이제 뉴머니 조달이다

1. 40억 달러의 외평채를 발행하다

2. 국제금융기구에서 차관을 도입하다

3. 무역금융차관을 확보하다

12 고금리를 극복하라

1. 콜금리 연 30퍼센트 이상을 요구하다

2. 피 말리는 금리인하협상을 벌이다

3. 어느 것이 사회안전망인가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외환위기 이후 10년, 대한민국은 위기로부터 자유로운가?

“물가와 임금이 계속 오르면서 자영업은 더욱 어려워지는 등 민생고통, 서민고통에서 보면 IMF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외환위기 때는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자영업 비율이나 실업률, 물가가 높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와 같은 민생고통지수가 굉장히 높다. 물가나 외환보유고, 국제수지, 성장률, 투자 등 흔히 말하는 경제 펀더멘털 가운데 외환보유고가 많고 부채비율이 낮아진 것을 빼고는 외환위기 때와 흡사하다. 그때는 재정이 튼튼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정책수단을 쓰는 데도 굉장히 제약이 많다.”

위기 극복 이후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2008년 6월, 여당 정책위의장의 솔직한 경기 진단이다. 대한민국 경제에 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제2의 경제위기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복하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외환위기를 교훈 삼아 정치와 경제,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대의 요청에 우리는 적절히 대응하여 왔는가?

저자는 먼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하나하나 들춰낸다. 그 상황이 너무나 생생하고 현실적이어서, 또다시 몸이 경직되고 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가는 대목도 많다. 당시 현역 경제관료로서 위기의 발생과 확산, 협상과 구조조정, 그리고 극복에 이르기까지 외환위기 전 과정을 몸소 겪은 저자의 내밀한 기록이 때로 생경할 만큼 뼈아프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은 과거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국가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선진 대한민국’이란 시대정신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있다.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외환위기 이후 우리 정치,경제,사회는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학자 E. H. 카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외환위기라는 10년 전 사태를 부단히 현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왜 징비록인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은 조정에서 물러난 후 그가 겪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차분히 되돌아본다. 그리고 후일에 있을지 모를 더 큰 우환을 경계하고자 전란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것이 바로 《징비록(懲毖錄)》이다. 원래 ‘징비’는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유성룡은 이 《징비록》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을 자세하고 세밀하게 기술한다. 그는 뼈아픈 역사적 사실의 적나라한 기록을 통해 후대가 주의하고 경계해 다시는 그러한 국가적 위기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저자도 유성룡과 같은 심정으로 펜을 들었다. 다시는 외환위기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이 나라를 휩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는 10년 전의 경험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경제의 배를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고, 호수의 물이 완전히 말라 바닥이 드러난 뒤 밑에 널려 있는 수많은 쓰레기를 치우는 경험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 한국 경제와 사회를 보는 안목, 우리의 미래를 예견하는 상상력 등에 일생일대의 큰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위기의 경보음’은 들리지 않는다

위기는 소리 없이 다가오고 그래서 더욱 무섭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위기는 소리 없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려운 일이 닥치기 전에 반드시 경보음이 울린다는 것이다. 다만, 위기의 요소가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놓쳐버리게 될 만큼 위기의 경보음은 알아차리기 힘들다. 저자는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 이미 수차례에 경보음이 울렸지만 우리가 그것을 국난 임박을 알리는 사이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환기시킨다.

“한국 경제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던 1997년, 위기를 알리는 징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첫 번째 경보음이 울렸던 시기는 한보철강 부도 이후 기아그룹 부도유예 적용 전까지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대기업 부도’라는 경제 문제는 국회 청문회를 거치며 정치 문제로 비화됐고, 그 과정에서 시중은행 은행장들이 구속됐다. 이런 일련의 비정상적인 사태가 이어지면서 금융권의 의사결정 기능은 마비됐고, 이는 결국 기업 연쇄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 두 번째 경보음은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위기였다. 이는 나라 밖에서 들려온 사이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구조와 성장 역사를 갖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 정부는 한보와 기아사태로 인해 밖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위기의 역사일수록 쉬이 복제된다

저자는 외환위기를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안팎에서 들려오는 경보음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 상황이 위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한국 경제가 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미 들어와 있는 위기 바이러스가 지금은 비활성 상태로 남아 있지만 요건만 충족되면 언제든 다시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금융기관의 단기자금 해외차입이 증가하고 있고, 가계대출의 건전성도 떨어지고 있다. 자산가격의 버블붕괴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다. 대외 여건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와 중국 경제의 불안 요인이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해오고 있다. 특히 이른바 3대 위험요소라 불리는 것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 세계 각국이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는 내적 위험요소가 폭발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근본적인 문제를 풀고자 하는 공동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는 선순환 구조에서 발생한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국제 경제의 불균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셋째, 그 규모가 기존의 개도국 경제위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그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며, 그 피해 지역은 미국과 중국 경제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는 동아시아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이 책의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 ‘역사는 반복되는가’ 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위기의 역사일수록 더욱 쉽게 복제됨을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보면 위기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 20개국에서 모두 25차례의 금융위기와 71차례의 외환위기가 발생했으니 한 나라에 평균 4번의 위기가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책 에 특별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여전히 국운을 걸고 피 말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싸고 전국이 들끓고 있다. 촛불을 손에 든 시위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끝없이 도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의 협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협상을 졸속으로 타결짓는 바람에 국민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과 재협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IMF와 전 세계 채권단과 벌였던 협상은 작금의 상황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외환위기는 그야말로 ‘국난’이었고, IMF 협상 테이블은 국운을 건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무런 무기 없이 국제적 룰과 심판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강력한 상대와 협상을 해야 했다.

강자와의 협상에서 약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단 한 번으로 협상이 끝나는 것은 아님을 이 책은 보여준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중요한 고비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기지와, 상대의 모욕과 수모를 참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끈기, 그리고 때로 열차가 달려오는 레일 위에서도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는 뱃심을 가진 협상가였다.

이 책의 키워드는 단연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IMF 자금지원조건을 위한 힐튼협상, 2선자금 조기도입을 위한 IMF 플러스협상, 단기외채 만기연장을 위한 뉴욕협상, 뉴머니 조달과 고금리협상 등 IMF 또는 채권단과의 피 말리는 협상 과정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긴박하고 치열했던 협상의 과정들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협상에 임했다. 상대에게 내놓을 카드 한 장 없이 맨 손으로 협상장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측이 당한 굴욕과 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협상의 배후에서 나이스 단장을 원격조정하며 한국 정부를 애먹이던 캉드쉬 총재는 12월 3일 아침 7시 35분,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임창렬 부총리와 김영삼 대통령 등을 만나 한국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온 것이다. …… 나는 방에서 나오면서 까다로운 조건이 추가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아니나 다를까, 20~30분 지나서 임창렬 부총리가 나를 방으로 부르더니 한국말로 “저 친구가 꽤 까다롭게 나오는구만. 3당 대통령 후보의 각서를 받아오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청와대에는 캉드쉬 총재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청와대 경제수석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쪽이라고 별다른 묘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캉드쉬 총재가 요구하는 대로 해야지, 어쩔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는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을 전해들은 게 오전 10시 30분쯤이었다. 오전 중 하기로 했던 서명식은 오후로 미루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3당 후보들로부터 각서를 받아오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뼈아픈 협상을 통해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음에도 서울 외환시장은 안정될 줄 몰랐다. 달러는 도착하는 즉시 다시 해외로 빠져 나갔다. 또 다시 협상에 나서야 했는데, 그게 바로 ‘IMF 플러스협상’이었다. 이 협상에서도 IMF는 터무니없는 것들을 요구했다. 힘없는 국가, 돈 없는 국가, 협상카드 없는 국가의 설움이었다. 저자는 당시의 울분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잠깐 쉬는 시간에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화장실에서 소리죽여 울고 나서 시계를 보니 약속한 휴식 시간이 지나 있었다. 곧바로 회의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눈이 부은 것은 물론이고 북받친 감정도 아직 정리가 안 돼 그럴 수가 없었다. 한참을 화장실에 있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IMF 플러스협상을 진행하면서 나는 국제 금융사회가 ‘살벌한 정글’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고 강한 자만 살아남는’ 처절한 정글이었다.”


하지만 이후 협상에서는 어느 정도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IMF 플러스협상을 통해 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정치적 불확실성도 걷혔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면 채권단들에게도 좋을 게 없다는 사실도 우리 협상단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한 치도 방심할 수 없는 게 협상의 본질, 우리 협상단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했다. 외채협상 전문가를 찾고 치밀한 작전을 세운 후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많은 통계수치까지 확보했다. 그리고 우리 측에 조금이라도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협상장에서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임했다. 상대가 제의한 안을 놓고는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우리 대표단은 일단 정회를 요청한 뒤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현재의 전망으로는 채권단이 더 이상 양보하지 않을 성싶었다. 채권단이 제시한 금리 수준은 이미 훈령에서 수용 가능한 범위 밑으로 내려와 있었다. 또 인도네시아의 사태 악화로 협상의 조기타결도 중요했다. 만약 금리를 더 낮추기 위해 이날 중으로 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었다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사태가 급격히 악화된다면 더 좋지 못한 결과를 얻을 위험도 있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금리를 낮추기 위해 한 번 더 베팅을 해서 수정안을 제시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채권단이 제시한 금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객관적으로 볼 때 채권단이 제시한 금리가 훈령에서 수용하라고 한 범위 안에 들어와 있으므로 그냥 수용하는 것이 협상 대표단에게는 위험이 없었다. 더 이상 낮출 수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금리를 더 낮추려 하다가 협상이 하루 이틀 더 지연되고 그 사이 주변 여건이 악화돼 현 수준의 금리도 받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은 모두 대표단이 지게 된다. 고독한 결단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10년’ 대신 ‘준비하는 10년’

저자가 이 책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10년이 걸렸다. 구상하는 데 3년, 고치고 또 고치는 데 7년이 소요됐다. 남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며 한탄할 때 저자는 그 기간을 ‘준비하는 10년’으로 삼았다.

“지난 7년 동안 나는 이 책을 세 번에 걸쳐 다시 쓰듯 고쳐 썼다. 초고는 2001년부터 시작해서 2003년 여름에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책으로 나오지 못하고 다시 기나긴 퇴고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비록 피를 흘린 전쟁은 아니었지만 외환위기는 우리 역사의 가장 참담했던 경제적 수모 중 하나로 꼽힌다. 오죽하면 ‘국난이라고 했을까. 그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간단할 리 없었다.

먼저 초고를 외환위기와 그 극복 과정에 참여한 많은 관계자들에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초고를 읽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2005년 초 2차 원고가 나왔다. 그럼에도 흡족지 않았다. 원고의 구석구석에 당시 상황을 극화한 어설픈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인 분들의 실명이 남아 있어 보다 객관적인 검증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또다시 2년이 걸렸다.

…… 이제 원고는 내 손을 떠났다. 외환위기의 발생과 수습, 그 전 과정의 한가운데 서서 느껴야 했던 자괴감과 외로움. 그리고 의무감 등도 탈고와 함께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책에 대한 평가를 떠나 홀가분한 마음이 앞선다. 10년 간 등에 지고 다니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이 책은 외환위기의 원인을 학문적으로 파헤친 분석서도, 개인적 위안을 위해 미담만을 가려 실은 회고록도 아니다. 이 책은 외환위기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기록으로서, 우리 경제사의 어두운 한 단면과 솔직하게 대면할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자들과 경제정책 담당자들, 그리고 금융 및 업계의 민간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