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R Policy Brief Series 는 국제 사회 내에서 수 없이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정책 이슈를 다룹니다. 핵심 정책 현안을 선정하여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책 제언을 듣고자합니다.격류를 타고 가는 시대 흐름을 올바로 적시에 파악하는데 다소마나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발행 일시 : 2024년 3월
발행 기관 : NEAR 재단
집필 제목 : 인도의 부상과 한국의 인태 전략
집필 정보 :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
Policy Brief 원문 PDF는 맨 하단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인도의 부상과 한국의 인태 전략
최 윤 정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
1. 한국의 인태 전략에서 왜 인도가 중요한가⑵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축(pivot)으로 삼고 항해의 나침반이 될 인도・태평양 전략(이하 인태 전략)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인태전략은 한국 정부 최초의 포괄적 지역전략이자,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인태 지역의 자유·평화·번영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관여 확대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의지를 행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9개의 중점추진과제를 설정하였으며, 정부 각 부처 및 기관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2023년 12월 52개에 달하는 범정부 이행계획을 발표하였다.
인태 전략의 실질적인 시행 원년인 2023년은 한국의 정체성에 기반한 외교를 실천하는데 주력하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를 펼치는 한편, 한국이 과거 경제발전 과정에서 얻은 혜택을 동료 국가들에게도 전파하여 “함께 잘 사는” 외교정책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한미일 삼각협력, NATO AP4, 태평양 도서국과의 정상회담, 아세안과의 연대구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2024년은 한국이 가치외교에서 시작하여 저변을 넓히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같이 한국 외교가 확장성을 추구함에 있어 인도가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세계 3위의 국방예산, 4위의 국방력, 5위의 경제력을 지닌 준(準) 강대국이다. 세계에서 IT 엔지니어링 및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자를 두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고, 기초 과학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인공지능, 우주‧항공과 같은 핵심 과학기술 수준도 높다. 이같은 국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인도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00년이 되는 2047년에 과거 인도의 영광을 재현하는 ‘강한 인도’를 실현하겠다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인도의 행보는 향후 국제정치 향방의 중대 변수로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인도는 미‧일‧인‧호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주요 20개국(G20), 민주주의 10개국(D10),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I2U2(인도‧이스라엘‧미국‧UAE) 등 서방(the West)이 주도하는 주요 협의체의 핵심 멤버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와의 파트너십을 미국의 인태전략 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외관계로 꼽았다.⑶
한편 인도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RIC(러시아-인도-중국) 그룹과 같이 반(反)서방으로 분류되는 협의체에서도 원년 멤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3년에는 SCO 와 G20의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같은해 1월과 11월 두 차례의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를 개최한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이자 리더의 위치를 재확인하였다. 모디 총리도 인도가 ‘세계의 친구(Vishwa-Mitra)⑷’라고 하면서 교량 국가로서 인도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냉전기 비동맹(Non-alignment)에서 시작된 인도 외교는 탈냉전기 다층적 제휴(multi-alignment)를 거쳐 최근에는 국력에 대한 자신감 상승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전방위 외교(all-alignment)’로 확장되고 있다.⑸ 미중 경쟁의 심화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서방과 비서방간 진영화가 가시화되면서 인도의 외교적 선택과 역할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인도・태평양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중심이자 양 진영에 모두 가담하고 있는 인도와의 외교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으로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고 독자적인 지역전략을 수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24년 4~5월 총선에서 3연임이 기정사실화⑹ 되고 있는 가운데 모디 정부가 강조하는 인도의 외교 비전을 이해하고 한국 외교 비전과의 접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인도 관계는 향후 발전의 여지가 크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양국은 놀라운 협력의 잠재력을 갖고 있으나 성과는 잠재력에 미치지 못했다. 외교 및 안보 측면에서의 거리감은 더 컸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 개념을 도입하면서 한국과 인도가 모두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을 찾아 나가는 시기에 한국과 인도는 서로에게 과거와는 다른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된다. 특히 이는 양국이 가치와 이익을 모두 중시하는 외교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한-인도 협력의 새로운 전략적 가치
1990년대 양국 관계는 무역과 투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바, 1990년 10억 달러 미만이었던 양자 교역은 2022년 278억 달러에 달하는 성장을 보였다. 여기에는 2009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2010년의 전략적 동반자 협정(SPA), 2015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협정(SSPA) 등 몇 번의 이정표가 있었다.
CEPA와 SSPA 외에도 한국과 인도는 2010년 9월 국방 협력과 국방 연구 및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 2011년 민간 핵에너지 협력 협정, 2014년에 기밀 군사 정보 보호 협정 등을 체결하여 협력을 공고화하였다. 2013년에 국장급에서 시작된 국방정책대화는 2018년에 국방 차관급으로 승격되어 '2+2 대화'로 발전하였다. 2020년에 방산협력 로드맵을 승인하였고, 인도는 2017년에 한국의 K9 자주포(현지 이름 ‘바지라’) 100문 도입에 이어 2023년 100문 추가 도입을 결정했다.
이같은 관계 발전은 양자 관계의 구조적 변화와 상호 보완성에 대한 공감대 위에 가능했다. 냉전 후의 세계 질서에서 인도의 외교정책은 중립보다는 미국과의 교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한국은 인도의 개방적인 시장경제가 주는 이점에 주목하였다. 1990년대 중반 북한과 파키스탄 간의 핵 및 미사일 기술 교환에 대한 보고서도 양국 관계 진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제 한국과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비약적인 관계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양국 모두 인태 외교 비전에서 ‘자유, 평화, 번영’의 가치를 중시한다. 특히 인도의 인태 전략은 미국, 일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의 개념 위에 ‘포용성’의 원칙을 추가하여(Free, Open, Inclusive Indo-Pacific, FOIIP), 기존의 인태 전략이 내포했던 배타성을 최소화하는 대신 협력의 기회를 창출하는데 보다 집중하였다.
중국의 공세적 부상을 위협으로 인지하면서도 '포용성'의 협력 원칙을 통해 중국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인도의 전략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또인도는 일본을 한국과 함께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지역 질서 구현의 핵심적인 파트너로 인식하며, 한일 관계 개선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동아시아를 넘어 남태평양 국가들에 대한 접근방식도 유사하다. 2023년 5월에 인도 총리는 14개 남태평양 국가와 함께 3차 인도-태평양 제도 협력 포럼(FIPIC) 정상회의에 참여했고, 같은 달에 윤석열 정부도 한국 최초로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한국의 인도・태평양 비전을 공유하였다.
양국은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를 연결하려는 노력에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나라로서 특히 2010년 G-20 정상회의 개최 이후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늘리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연결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전술한 바와 같이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와의 협력은 한국 인태 전략의 기여외교(Contributive Diplomacy) 차원에서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인태 전략 차원에서의 한-인도 협력 방향
한국은 달라진 전략 환경과 그 안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는 인도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인도를 ‘전략적 협력국가’로 삼고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도는 군사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 기술의 측면에서 모두 중국을 대체하기 위한 의지와 함께 일정 정도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인도는 중국의 대안적 파트너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대중국 관계에도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양국의 인태 전략 하에서 한-인도 관계는 지역 및 양자간 수준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거듭나는 중요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양국 인태 전략의 비전과 실행 계획을 토대로 자유, 평화, 번영의 한-인도 협력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림.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한-인도 파트너십의 발전 방향
출처: 동 주제 관련 저자의 최근 원고를 수정, 보완하였음. Yoon Jung Choi and Sandip Kumar Mishra. 2024. “Pivotal Partnership in the Indo-Pacific: Assessment of Korea-India Relations and the Road Ahead.” 『Sejong Policy Brief』 No. 2023-19(2024.1.12.)
가. 자유
[상호 전략적 가치와 인식 제고]
한국과 인도는 위협인식, 서로의 전략적 가치와 비전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심도 있는 이해를 발전시킬 때 인태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파트너십으로 향하는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양자 관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일 견고한 기초가 될 수 있다.
[양자 및 다자 플랫폼에서의 협력 증진]
선도적 중견국인 한국과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는 양자 뿐만 아니라 다자 플랫폼에서의 협력을 통하여 지역 질서 유지와 번영의 기틀을 놓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양국이 이미 참여하고 있는 IPEF, ARF, IORA와 같은 기존의 플랫폼 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양국 중 하나가 참여하는 Quad, RCEP와 같은 협의체에 상대 국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한 파트너십]
동시에 양국은 특정 문제에 대한 전략적 입장과 의견 차이를 인정하여 성숙한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유연성을 갖출 필요도 있다.
나. 평화
[해양 안보 분야의 긴밀한 국방 협력]
인도양 해상교통로(SLOC) 안보는 한국과 인도의 국가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해양 안보를 강조하는 인도의 인태 해양 이니셔티브(IPOI)에서 해적 퇴치 및 재난 구호와 관련하여 공동 해양 훈련 및 교류 강화도 협력이 유망한 분야이다. 한국은 인도와 미국이 주도하는 말라바르 해상연합훈련을 비롯하여 다양한 양자 및 다자간 해양훈련 참여를 확대하고 인도양 해양정보센터(Information Fusion Centre) 참여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인태 개발협력 논의 확대]
양국의 협력으로 기후 변화, 환경 문제, 재난 구호, 빈곤 완화,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포괄적인 대화 및 글로벌 사우스 및 노스 간의 공정한 자원 분배 촉진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 강화]
한국과 인도는 한반도 평화가 인태 지역의 평화 실현에 핵심적인 조건이라는 인식 하에 전략적 소통 및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도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의 빈도와 수위가 높아지면서 국제 비핵화 레짐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있어 기여할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다. 번영
[단순 무역 관계를 넘어 함께 번영하는 파트너십]
양국은 단순한 무역 관계를 넘어 넓은 분야에 걸쳐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무역적자 해소, 기술 공유와 같은 인도의 지속적인 요청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인도는 한국의 기업환경 개선과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에 보다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설될 한-인도 산업협력위원회 뿐만 아니라, 경제공동위원회와 경제협력협의회와 같은 기존의 협의 기관에서도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핵심 기술 및 광물 협력]
최첨단 기술과 핵심 광물은 경제안보 정책의 핵심이다. 우주, 인공지능 및 녹색 산업과 같은 하이테크 분야 및 전략적 광물에서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의 기초 과학 역량과 한국의 응용 과학 및 상업화 역량이 결합한다면 양국은 제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협력은 양국의 경제안보를 강화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인도 합동 공급망 구축]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는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생산, 소비의 새로운 거점으로 발돋움하는 인도에게는 미래를 좌우하는 기회이다. 양국 경제가 톱니바퀴처럼 긴밀하게 맞물릴 수 있는 한-인도 공급망 이니셔티브 출범도 고려해야 한다.
참고 문헌
1) 본 토론문은 주제와 관련된 저자의 최근 원고를 수정 및 보완하여 작성하였으며, 가급적 해당 부분의 출처를 하단에 표기하였음.
2)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최윤정. 2023. "인도‧태평양 시대의 한-인도 협력." 『외교』 제145호(2023년 4월)을 수정 및 업데이트 하였음.
3) “India ties most important for Joe Biden: White House.” The Times of India (April 10, 2022); The White House. 2022. 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4) 2023년 8월 15일 인도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모디 총리는 인도가 세계의 친구로서 세계에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India Emerges As 'Vishwa-Mitra', Bringing Stability To The World: PM Modi”(https://www.ndtv.com/india-news/india-emerges-as-vishwa-mitra-bringing-stability-to-the-world-pm-narendra-modi-4300115).
5) 탈냉전기 인도 외교노선의 변화에 대해서는 최윤정. 2022. “신냉전 시대 인도의 외교적 선택과 전략적 자율성” 『세종정책브리프』 2022-17. 세종연구소를 참고
6) 최윤정. 2024. "인도 정세와 2024년 전망." 『정세와정책』 2024년 1월호 (통권 370호). 세종연구소.
NEAR Policy Brief Series 는 국제 사회 내에서 수 없이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정책 이슈를 다룹니다. 핵심 정책 현안을 선정하여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책 제언을 듣고자합니다.격류를 타고 가는 시대 흐름을 올바로 적시에 파악하는데 다소마나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발행 일시 : 2024년 3월
발행 기관 : NEAR 재단
집필 제목 : 인도의 부상과 한국의 인태 전략
집필 정보 : 최윤정 세종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센터장
Policy Brief 원문 PDF는 맨 하단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인도의 부상과 한국의 인태 전략
최 윤 정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
1. 한국의 인태 전략에서 왜 인도가 중요한가⑵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글로벌 중추국가 외교의 축(pivot)으로 삼고 항해의 나침반이 될 인도・태평양 전략(이하 인태 전략)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인태전략은 한국 정부 최초의 포괄적 지역전략이자,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인태 지역의 자유·평화·번영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관여 확대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의지를 행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9개의 중점추진과제를 설정하였으며, 정부 각 부처 및 기관들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2023년 12월 52개에 달하는 범정부 이행계획을 발표하였다.
인태 전략의 실질적인 시행 원년인 2023년은 한국의 정체성에 기반한 외교를 실천하는데 주력하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를 펼치는 한편, 한국이 과거 경제발전 과정에서 얻은 혜택을 동료 국가들에게도 전파하여 “함께 잘 사는” 외교정책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한미일 삼각협력, NATO AP4, 태평양 도서국과의 정상회담, 아세안과의 연대구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2024년은 한국이 가치외교에서 시작하여 저변을 넓히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같이 한국 외교가 확장성을 추구함에 있어 인도가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세계 3위의 국방예산, 4위의 국방력, 5위의 경제력을 지닌 준(準) 강대국이다. 세계에서 IT 엔지니어링 및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자를 두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고, 기초 과학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 인공지능, 우주‧항공과 같은 핵심 과학기술 수준도 높다. 이같은 국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인도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00년이 되는 2047년에 과거 인도의 영광을 재현하는 ‘강한 인도’를 실현하겠다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인도의 행보는 향후 국제정치 향방의 중대 변수로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인도는 미‧일‧인‧호 4자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주요 20개국(G20), 민주주의 10개국(D10),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I2U2(인도‧이스라엘‧미국‧UAE) 등 서방(the West)이 주도하는 주요 협의체의 핵심 멤버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와의 파트너십을 미국의 인태전략 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외관계로 꼽았다.⑶
한편 인도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RIC(러시아-인도-중국) 그룹과 같이 반(反)서방으로 분류되는 협의체에서도 원년 멤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3년에는 SCO 와 G20의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같은해 1월과 11월 두 차례의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를 개최한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이자 리더의 위치를 재확인하였다. 모디 총리도 인도가 ‘세계의 친구(Vishwa-Mitra)⑷’라고 하면서 교량 국가로서 인도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냉전기 비동맹(Non-alignment)에서 시작된 인도 외교는 탈냉전기 다층적 제휴(multi-alignment)를 거쳐 최근에는 국력에 대한 자신감 상승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전방위 외교(all-alignment)’로 확장되고 있다.⑸ 미중 경쟁의 심화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서방과 비서방간 진영화가 가시화되면서 인도의 외교적 선택과 역할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인도・태평양의 지정학 및 지경학적 중심이자 양 진영에 모두 가담하고 있는 인도와의 외교는 한국이 인도・태평양으로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고 독자적인 지역전략을 수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24년 4~5월 총선에서 3연임이 기정사실화⑹ 되고 있는 가운데 모디 정부가 강조하는 인도의 외교 비전을 이해하고 한국 외교 비전과의 접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인도 관계는 향후 발전의 여지가 크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양국은 놀라운 협력의 잠재력을 갖고 있으나 성과는 잠재력에 미치지 못했다. 외교 및 안보 측면에서의 거리감은 더 컸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 개념을 도입하면서 한국과 인도가 모두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을 찾아 나가는 시기에 한국과 인도는 서로에게 과거와는 다른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된다. 특히 이는 양국이 가치와 이익을 모두 중시하는 외교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한-인도 협력의 새로운 전략적 가치
1990년대 양국 관계는 무역과 투자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던 바, 1990년 10억 달러 미만이었던 양자 교역은 2022년 278억 달러에 달하는 성장을 보였다. 여기에는 2009년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 2010년의 전략적 동반자 협정(SPA), 2015년 특별 전략적 동반자 협정(SSPA) 등 몇 번의 이정표가 있었다.
CEPA와 SSPA 외에도 한국과 인도는 2010년 9월 국방 협력과 국방 연구 및 개발에 관한 양해각서, 2011년 민간 핵에너지 협력 협정, 2014년에 기밀 군사 정보 보호 협정 등을 체결하여 협력을 공고화하였다. 2013년에 국장급에서 시작된 국방정책대화는 2018년에 국방 차관급으로 승격되어 '2+2 대화'로 발전하였다. 2020년에 방산협력 로드맵을 승인하였고, 인도는 2017년에 한국의 K9 자주포(현지 이름 ‘바지라’) 100문 도입에 이어 2023년 100문 추가 도입을 결정했다.
이같은 관계 발전은 양자 관계의 구조적 변화와 상호 보완성에 대한 공감대 위에 가능했다. 냉전 후의 세계 질서에서 인도의 외교정책은 중립보다는 미국과의 교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한국은 인도의 개방적인 시장경제가 주는 이점에 주목하였다. 1990년대 중반 북한과 파키스탄 간의 핵 및 미사일 기술 교환에 대한 보고서도 양국 관계 진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제 한국과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비약적인 관계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양국 모두 인태 외교 비전에서 ‘자유, 평화, 번영’의 가치를 중시한다. 특히 인도의 인태 전략은 미국, 일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의 개념 위에 ‘포용성’의 원칙을 추가하여(Free, Open, Inclusive Indo-Pacific, FOIIP), 기존의 인태 전략이 내포했던 배타성을 최소화하는 대신 협력의 기회를 창출하는데 보다 집중하였다.
중국의 공세적 부상을 위협으로 인지하면서도 '포용성'의 협력 원칙을 통해 중국과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인도의 전략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또인도는 일본을 한국과 함께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지역 질서 구현의 핵심적인 파트너로 인식하며, 한일 관계 개선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동아시아를 넘어 남태평양 국가들에 대한 접근방식도 유사하다. 2023년 5월에 인도 총리는 14개 남태평양 국가와 함께 3차 인도-태평양 제도 협력 포럼(FIPIC) 정상회의에 참여했고, 같은 달에 윤석열 정부도 한국 최초로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한국의 인도・태평양 비전을 공유하였다.
양국은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를 연결하려는 노력에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나라로서 특히 2010년 G-20 정상회의 개최 이후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늘리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연결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전술한 바와 같이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와의 협력은 한국 인태 전략의 기여외교(Contributive Diplomacy) 차원에서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인태 전략 차원에서의 한-인도 협력 방향
한국은 달라진 전략 환경과 그 안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는 인도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인도를 ‘전략적 협력국가’로 삼고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도는 군사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 기술의 측면에서 모두 중국을 대체하기 위한 의지와 함께 일정 정도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인도는 중국의 대안적 파트너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대중국 관계에도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양국의 인태 전략 하에서 한-인도 관계는 지역 및 양자간 수준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거듭나는 중요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양국 인태 전략의 비전과 실행 계획을 토대로 자유, 평화, 번영의 한-인도 협력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림.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 한-인도 파트너십의 발전 방향
출처: 동 주제 관련 저자의 최근 원고를 수정, 보완하였음. Yoon Jung Choi and Sandip Kumar Mishra. 2024. “Pivotal Partnership in the Indo-Pacific: Assessment of Korea-India Relations and the Road Ahead.” 『Sejong Policy Brief』 No. 2023-19(2024.1.12.)
가. 자유
[상호 전략적 가치와 인식 제고]
한국과 인도는 위협인식, 서로의 전략적 가치와 비전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심도 있는 이해를 발전시킬 때 인태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파트너십으로 향하는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양자 관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일 견고한 기초가 될 수 있다.
[양자 및 다자 플랫폼에서의 협력 증진]
선도적 중견국인 한국과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는 양자 뿐만 아니라 다자 플랫폼에서의 협력을 통하여 지역 질서 유지와 번영의 기틀을 놓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양국이 이미 참여하고 있는 IPEF, ARF, IORA와 같은 기존의 플랫폼 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양국 중 하나가 참여하는 Quad, RCEP와 같은 협의체에 상대 국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한 파트너십]
동시에 양국은 특정 문제에 대한 전략적 입장과 의견 차이를 인정하여 성숙한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유연성을 갖출 필요도 있다.
나. 평화
[해양 안보 분야의 긴밀한 국방 협력]
인도양 해상교통로(SLOC) 안보는 한국과 인도의 국가 이익과 직결되어 있다. 해양 안보를 강조하는 인도의 인태 해양 이니셔티브(IPOI)에서 해적 퇴치 및 재난 구호와 관련하여 공동 해양 훈련 및 교류 강화도 협력이 유망한 분야이다. 한국은 인도와 미국이 주도하는 말라바르 해상연합훈련을 비롯하여 다양한 양자 및 다자간 해양훈련 참여를 확대하고 인도양 해양정보센터(Information Fusion Centre) 참여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인태 개발협력 논의 확대]
양국의 협력으로 기후 변화, 환경 문제, 재난 구호, 빈곤 완화, 규칙 기반 질서에 대한 포괄적인 대화 및 글로벌 사우스 및 노스 간의 공정한 자원 분배 촉진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 강화]
한국과 인도는 한반도 평화가 인태 지역의 평화 실현에 핵심적인 조건이라는 인식 하에 전략적 소통 및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도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의 빈도와 수위가 높아지면서 국제 비핵화 레짐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있어 기여할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다. 번영
[단순 무역 관계를 넘어 함께 번영하는 파트너십]
양국은 단순한 무역 관계를 넘어 넓은 분야에 걸쳐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무역적자 해소, 기술 공유와 같은 인도의 지속적인 요청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인도는 한국의 기업환경 개선과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에 보다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설될 한-인도 산업협력위원회 뿐만 아니라, 경제공동위원회와 경제협력협의회와 같은 기존의 협의 기관에서도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핵심 기술 및 광물 협력]
최첨단 기술과 핵심 광물은 경제안보 정책의 핵심이다. 우주, 인공지능 및 녹색 산업과 같은 하이테크 분야 및 전략적 광물에서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의 기초 과학 역량과 한국의 응용 과학 및 상업화 역량이 결합한다면 양국은 제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이상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협력은 양국의 경제안보를 강화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인도 합동 공급망 구축]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는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생산, 소비의 새로운 거점으로 발돋움하는 인도에게는 미래를 좌우하는 기회이다. 양국 경제가 톱니바퀴처럼 긴밀하게 맞물릴 수 있는 한-인도 공급망 이니셔티브 출범도 고려해야 한다.
참고 문헌
1) 본 토론문은 주제와 관련된 저자의 최근 원고를 수정 및 보완하여 작성하였으며, 가급적 해당 부분의 출처를 하단에 표기하였음.
2)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최윤정. 2023. "인도‧태평양 시대의 한-인도 협력." 『외교』 제145호(2023년 4월)을 수정 및 업데이트 하였음.
3) “India ties most important for Joe Biden: White House.” The Times of India (April 10, 2022); The White House. 2022. Indo-Pacific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4) 2023년 8월 15일 인도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모디 총리는 인도가 세계의 친구로서 세계에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India Emerges As 'Vishwa-Mitra', Bringing Stability To The World: PM Modi”(https://www.ndtv.com/india-news/india-emerges-as-vishwa-mitra-bringing-stability-to-the-world-pm-narendra-modi-4300115).
5) 탈냉전기 인도 외교노선의 변화에 대해서는 최윤정. 2022. “신냉전 시대 인도의 외교적 선택과 전략적 자율성” 『세종정책브리프』 2022-17. 세종연구소를 참고
6) 최윤정. 2024. "인도 정세와 2024년 전망." 『정세와정책』 2024년 1월호 (통권 370호). 세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