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AR Policy Brief Series 는 국제 사회 내에서 수 없이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정책 이슈를 다룹니다. 핵심 정책 현안을 선정하여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책 제언을 듣고자합니다.격류를 타고 가는 시대 흐름을 올바로 적시에 파악하는데 다소마나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발행 일시 : 2023년 10월
발행 기관 : NEAR 재단
집필 제목 : 미중 전략 경쟁과 우리의 경제안보 대응 반응
집필 정보 :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Policy Brief 원문 PDF는 맨 하단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미중 전략 경쟁과 우리의 경제안보 대응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 연원호
1. 미중 전략 경쟁
세계는 지금 경제안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방과 외교만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안보는 경제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경제안보란 외부의 경제적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할 국가이익은 현재의 생존과 미래의 생존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생존은 최근 각국이 주목하는 공급망 안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에너지 안보나 식량 안보 등이 그 예다. 미래의 생존은 우리의 경쟁력에 달려있다는 측면에서 첨단기술과 전략산업의 육성과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주요국의 현재 내놓는 정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경제안보라는 정책목표 아래 크게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 40년 동안 미국은 중국의 근대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많은 중국 유학생을 받아줬고, 중국의 WTO 가입을 도왔으며, 무역 면에서 양국의 상호의존도는 깊어졌다. 중국의 정치 체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양국의 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중 포용(engagement) 정책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말기 그리고 트럼프 정권 시절부터 중국과의 경쟁(competition)이라는 관점이 강해졌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에 들어와서는 미중 전략 경쟁이 더 첨예화되는 모습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상대적 글로벌 리더십 약화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도전이 있다. 미국은 대중국 무역 적자를 문제 삼으며 양국의 지금까지의 경제협력 관계, 상호 의존을 재검토하고 첨단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2. 미국 경제안보 정책의 틀: 중국리스크 관리
세계화의 빠른 진전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가운데 최근 중국의 경제·기술·군사·외교적 역량의 부상으로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의 초점은 대중국 정책에 있다.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중국 리스크 관리다. 공급망 차원에서는 핵심품목의 중국의존도 줄이기를 실현하고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2022년 5월 토니 블링컨(Antony J. Blinken) 국무장관의 대중국 연설, 2022년 10월 백악관 “국가안보 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2023년 4월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 보좌관의 브루킹스 연설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미국은 투자(Invest), 연대(Align), 경쟁(Compete)을 미국 경제안보, 나아가 국가안보의 3대 대응의 틀로 설정하고 있다. ‘투자’란, 핵심품목에 대한 국내 생산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정부는 민간 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형태를 취하고자 한다. ‘연대’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목표는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파트너 모두와 함께 투자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하고 탄력적인 첨단기술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경쟁’은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보다 우월한 위치를 확고히 하고 미국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력 유지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에서부터 초당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각종 수출통제, 수입규제, 투자규제 정책들을 통해 경쟁국을 견제하고, 동시에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투명하고 공정한 새로운 국제경제 협력의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3. 미국의 대중국 인식
최근 몇년간 미국 정치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을 꼽으라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외의 강한 비난에 직면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이익은 과거의 위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며, 지금 미국의 가장 심각한 위협은 중국과의 경쟁이라고 언급했다. 2022년 10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경제, 군사, 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가장 핵심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0월 블링컨 국무장관은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서 “미국은 변곡점에 서 있으며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은 기술”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의 빠른 기술 추격의 원인을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에서 찾고 있다. 2018년 미중 간 관세전쟁의 시작을 알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의 배경이 된 보고서는 USTR의 301조 특별 조사보고서였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중국정부의 기술이전 강요 (2) 중국내 차별적 기술 인허가 (3)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기업들의 공격적 해외자산 취득 (4) 기술 및 영업비밀 탈취를 위한 불법적 해킹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불공정한 선진기술 추격 전략을 통해 중국의 혁신 생산성을 크게 올린 것으로 믿는다.
4.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중국의 취약점인 원천기술을 공략하는 것, 즉 첨단기술에 있어 기술 탈동조화(tech decoupling)를 꾀하는 것이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와 다른 점은 중국과의 공존을 바탕으로 한 경쟁을 상정하고, 우방국들과의 연대를 통한 유리한 경쟁환경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기조 강화다.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 더 이상 중국의 부상을 용인할 생각을 버렸다. 2022년 9월 16일에 있었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의 연설에서 제이크 설리번은 중국과 특정 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미국은 특정 과학기술에 있어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리는 것이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컴퓨팅 관련 기술, 바이오 기술, 친환경 기술을 언급했으며, 수출통제의 전략적 활용도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설리번 기술 독트린(Sullivan Tech Doctrine)”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으며 각 부처 대중국 견제정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몇 세대만 더 앞서면 된다는 식의 접근 방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전략적 환경이 아니다. 첨단 로직 및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특정 기술의 기본 특성을 감안할 때 가능한 한 많은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기조 변화를 반영하듯, 실제로 2022년 10월 7일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반도체 수출통제 규정을 강화한 이래 일본 및 네덜란드와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 확대에 합의하는 등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는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첨단 반도체 제조가 더이상 중국 내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23년 8월 9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발표된 아웃바운드 투자 모니터링도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등 3개 기술 분야에 집중되었다.
5.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최근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묘사하는 단어로 '디리스킹'이 부상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023년 3월 30일 EU의 대중국 전략을 설명하며 처음 사용했고, 4월 27일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도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이라고 언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기조가 유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중 관계가 화해무드로 전환될 것이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다.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강경한 대중국 정책기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디리스킹’이라는 표현은 말그대로 리스크에 노출될 확률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주요국들이 말하는 리스크는 중국 리스크다. 미국, EU, 한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이 중국 리스크에 노출을 줄이고자 하는데는 이견(異見)이 없다. 모두가 디리스킹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EU는 다변화(diversification)를 디리스킹의 핵심 수단으로 삼은 반면, 미국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선택적 디커플링(selective decoupling) 전략을 디리스킹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중국을 방문하며 이야기하는 중국과의 상생은 무조건적 협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조건부 상생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룰(rule)에 기반한 경쟁을 할 때만 지속가능한 윈윈(win-win)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중국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의무를 다하고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지 않는 한 중국 의존도 줄이기와 중국 견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무조건 악마화할(demonize) 필요도 없지만 조건 없는 면죄부를 줘서도 안 된다(sanitize)는 인식을 보여왔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이 '제한된 분야의 강력한 통제(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 그대로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 미국의 ‘선택적(small yard) 디커플링(high fence)’ 대중국 견제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미국의 의도를 오판해서는 안 된다.
6. 우리의 대응
우리의 경제안보 대응도 주요국의 경제안보 정책처럼 공급망 강화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방법에 있어서도 정부주도의 산업정책 강화를 통한 국내 생산역량 구축과 우방국(like minded countries)과의 협력 강화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2022년부터 우리는 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제정하고 공급망 기본법, 국가자원안보특별법, 소부장 특별법 개정 등 공급망 3법을 준비했을 뿐만아니라, IPEF, MSP, FAB4(또는 CHIP4)에 참여하는 등, 산업 및 기술정책과 국내외 협력 강화를 통해 공급망 안정화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육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우리 경제안보와 미국의 경제안보, EU의 경제안보, 일본의 경제안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외부의 경제적 위협이나 위험으로부터 국가의 생존을 지킨다는 근본적인 목적은 같을지 모르지만, 각국의 산업역량과 교역구조 등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국가별로 세부적인 경제안보 위협인식과 대응전략은 똑같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2022년 한미 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사태와 같은 문제가 다른 국가들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모든 국가가 지켜야 될 대전제는 경제안보가 경제적 번영의 전제조건이 되어야지 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사전에 우리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우리의 정책적 우선순위와 협상의 마지노선을 설정한 후, 우리의 강점을 레버리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물러서서 각국의 조치를 기다릴 때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나아가 대세계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때다.
지금 시점의 한국의 선택은 미·중간 진영의 선택이 아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의 선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세계가 완전한 디커플링이 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미국도 본인들의 대중국 정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로 ‘디리스킹(de-risking)’을 선택했다. 미국도 미중 관계에서 대결적 자세를 취하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만 미‧중 간 완전 대립구도를 전제한 정책 수립을 할 필요는 없다. 또한 미중 관계가 악화될수록 지정학적·지경학적인 이유에서 우리는 한미·한중 소통채널을 모두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내세우며 미·중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균형적 입장을 견지중인 중견국(midpower), 특히 유럽 국가들과 연대·협력을 강화하고, 미·중 양측의 압박에 대한 공동 대응해 나갈 필요도 있다.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는 진영의 선택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만의 가이드라인과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자체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정부가 2022년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활용을 항상 염두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갈등이 야기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만의 명확한 통상·외교 원칙인 “포용, 신뢰, 호혜”를 모든 경우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며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NEAR Policy Brief Series 는 국제 사회 내에서 수 없이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정책 이슈를 다룹니다. 핵심 정책 현안을 선정하여 그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정책 제언을 듣고자합니다.격류를 타고 가는 시대 흐름을 올바로 적시에 파악하는데 다소마나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발행 일시 : 2023년 10월
발행 기관 : NEAR 재단
집필 제목 : 미중 전략 경쟁과 우리의 경제안보 대응 반응
집필 정보 :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Policy Brief 원문 PDF는 맨 하단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미중 전략 경쟁과 우리의 경제안보 대응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 연원호
1. 미중 전략 경쟁
세계는 지금 경제안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방과 외교만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안보는 경제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경제안보란 외부의 경제적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할 국가이익은 현재의 생존과 미래의 생존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생존은 최근 각국이 주목하는 공급망 안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에너지 안보나 식량 안보 등이 그 예다. 미래의 생존은 우리의 경쟁력에 달려있다는 측면에서 첨단기술과 전략산업의 육성과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주요국의 현재 내놓는 정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경제안보라는 정책목표 아래 크게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 40년 동안 미국은 중국의 근대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많은 중국 유학생을 받아줬고, 중국의 WTO 가입을 도왔으며, 무역 면에서 양국의 상호의존도는 깊어졌다. 중국의 정치 체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양국의 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중 포용(engagement) 정책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말기 그리고 트럼프 정권 시절부터 중국과의 경쟁(competition)이라는 관점이 강해졌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에 들어와서는 미중 전략 경쟁이 더 첨예화되는 모습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상대적 글로벌 리더십 약화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도전이 있다. 미국은 대중국 무역 적자를 문제 삼으며 양국의 지금까지의 경제협력 관계, 상호 의존을 재검토하고 첨단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2. 미국 경제안보 정책의 틀: 중국리스크 관리
세계화의 빠른 진전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가운데 최근 중국의 경제·기술·군사·외교적 역량의 부상으로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의 초점은 대중국 정책에 있다.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중국 리스크 관리다. 공급망 차원에서는 핵심품목의 중국의존도 줄이기를 실현하고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2022년 5월 토니 블링컨(Antony J. Blinken) 국무장관의 대중국 연설, 2022년 10월 백악관 “국가안보 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2023년 4월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 보좌관의 브루킹스 연설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미국은 투자(Invest), 연대(Align), 경쟁(Compete)을 미국 경제안보, 나아가 국가안보의 3대 대응의 틀로 설정하고 있다. ‘투자’란, 핵심품목에 대한 국내 생산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정부는 민간 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형태를 취하고자 한다. ‘연대’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목표는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파트너 모두와 함께 투자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하고 탄력적인 첨단기술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경쟁’은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보다 우월한 위치를 확고히 하고 미국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력 유지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에서부터 초당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각종 수출통제, 수입규제, 투자규제 정책들을 통해 경쟁국을 견제하고, 동시에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투명하고 공정한 새로운 국제경제 협력의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3. 미국의 대중국 인식
최근 몇년간 미국 정치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을 꼽으라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외의 강한 비난에 직면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이익은 과거의 위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며, 지금 미국의 가장 심각한 위협은 중국과의 경쟁이라고 언급했다. 2022년 10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경제, 군사, 외교 등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가장 핵심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0월 블링컨 국무장관은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서 “미국은 변곡점에 서 있으며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은 기술”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의 빠른 기술 추격의 원인을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에서 찾고 있다. 2018년 미중 간 관세전쟁의 시작을 알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의 배경이 된 보고서는 USTR의 301조 특별 조사보고서였다.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중국정부의 기술이전 강요 (2) 중국내 차별적 기술 인허가 (3)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기업들의 공격적 해외자산 취득 (4) 기술 및 영업비밀 탈취를 위한 불법적 해킹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불공정한 선진기술 추격 전략을 통해 중국의 혁신 생산성을 크게 올린 것으로 믿는다.
4.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중국의 취약점인 원천기술을 공략하는 것, 즉 첨단기술에 있어 기술 탈동조화(tech decoupling)를 꾀하는 것이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와 다른 점은 중국과의 공존을 바탕으로 한 경쟁을 상정하고, 우방국들과의 연대를 통한 유리한 경쟁환경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기조 강화다.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 더 이상 중국의 부상을 용인할 생각을 버렸다. 2022년 9월 16일에 있었던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의 연설에서 제이크 설리번은 중국과 특정 격차를 유지하는 전략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미국은 특정 과학기술에 있어 중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벌리는 것이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컴퓨팅 관련 기술, 바이오 기술, 친환경 기술을 언급했으며, 수출통제의 전략적 활용도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설리번 기술 독트린(Sullivan Tech Doctrine)”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으며 각 부처 대중국 견제정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몇 세대만 더 앞서면 된다는 식의 접근 방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전략적 환경이 아니다. 첨단 로직 및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특정 기술의 기본 특성을 감안할 때 가능한 한 많은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기조 변화를 반영하듯, 실제로 2022년 10월 7일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반도체 수출통제 규정을 강화한 이래 일본 및 네덜란드와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 확대에 합의하는 등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견제는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첨단 반도체 제조가 더이상 중국 내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23년 8월 9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발표된 아웃바운드 투자 모니터링도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등 3개 기술 분야에 집중되었다.
5.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최근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묘사하는 단어로 '디리스킹'이 부상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023년 3월 30일 EU의 대중국 전략을 설명하며 처음 사용했고, 4월 27일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도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이라고 언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기조가 유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중 관계가 화해무드로 전환될 것이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다.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강경한 대중국 정책기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디리스킹’이라는 표현은 말그대로 리스크에 노출될 확률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주요국들이 말하는 리스크는 중국 리스크다. 미국, EU, 한국, 일본, 호주 등 주요국이 중국 리스크에 노출을 줄이고자 하는데는 이견(異見)이 없다. 모두가 디리스킹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EU는 다변화(diversification)를 디리스킹의 핵심 수단으로 삼은 반면, 미국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선택적 디커플링(selective decoupling) 전략을 디리스킹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중국을 방문하며 이야기하는 중국과의 상생은 무조건적 협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조건부 상생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룰(rule)에 기반한 경쟁을 할 때만 지속가능한 윈윈(win-win)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중국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의무를 다하고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지 않는 한 중국 의존도 줄이기와 중국 견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무조건 악마화할(demonize) 필요도 없지만 조건 없는 면죄부를 줘서도 안 된다(sanitize)는 인식을 보여왔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이 '제한된 분야의 강력한 통제(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 그대로 첨단기술 분야에 있어 미국의 ‘선택적(small yard) 디커플링(high fence)’ 대중국 견제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미국의 의도를 오판해서는 안 된다.
6. 우리의 대응
우리의 경제안보 대응도 주요국의 경제안보 정책처럼 공급망 강화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방법에 있어서도 정부주도의 산업정책 강화를 통한 국내 생산역량 구축과 우방국(like minded countries)과의 협력 강화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2022년부터 우리는 첨단전략산업 특별법을 제정하고 공급망 기본법, 국가자원안보특별법, 소부장 특별법 개정 등 공급망 3법을 준비했을 뿐만아니라, IPEF, MSP, FAB4(또는 CHIP4)에 참여하는 등, 산업 및 기술정책과 국내외 협력 강화를 통해 공급망 안정화와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육성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우리 경제안보와 미국의 경제안보, EU의 경제안보, 일본의 경제안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외부의 경제적 위협이나 위험으로부터 국가의 생존을 지킨다는 근본적인 목적은 같을지 모르지만, 각국의 산업역량과 교역구조 등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국가별로 세부적인 경제안보 위협인식과 대응전략은 똑같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2022년 한미 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사태와 같은 문제가 다른 국가들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모든 국가가 지켜야 될 대전제는 경제안보가 경제적 번영의 전제조건이 되어야지 그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사전에 우리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우리의 정책적 우선순위와 협상의 마지노선을 설정한 후, 우리의 강점을 레버리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물러서서 각국의 조치를 기다릴 때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나아가 대세계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때다.
지금 시점의 한국의 선택은 미·중간 진영의 선택이 아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의 선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세계가 완전한 디커플링이 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미국도 본인들의 대중국 정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로 ‘디리스킹(de-risking)’을 선택했다. 미국도 미중 관계에서 대결적 자세를 취하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만 미‧중 간 완전 대립구도를 전제한 정책 수립을 할 필요는 없다. 또한 미중 관계가 악화될수록 지정학적·지경학적인 이유에서 우리는 한미·한중 소통채널을 모두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내세우며 미·중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균형적 입장을 견지중인 중견국(midpower), 특히 유럽 국가들과 연대·협력을 강화하고, 미·중 양측의 압박에 대한 공동 대응해 나갈 필요도 있다.
지금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는 진영의 선택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우리만의 가이드라인과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자체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정부가 2022년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활용을 항상 염두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갈등이 야기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만의 명확한 통상·외교 원칙인 “포용, 신뢰, 호혜”를 모든 경우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며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