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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기 힘든 4가지 함정 (한국일보 23.03.11)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기 힘든 4가지 함정 (한국일보 23.03.11)

한국 외교, 잔혹한 겨울에 대비해야


140년 전 ‘조선책략’을 떠올리게 하는 외교안보 분야 신간(시진핑 新시대: 왜 한국에 도전인가?ㆍ정덕구 윤영관 외)이 10일 공개됐다. 조선책략이 대러시아 대응책을 다뤘다면, 이 신간은 러시아를 제치고 권위주의 진영의 초강대국이 된 중국이 주제다. 시진핑(習近平) 영구집권으로 발톱을 드러낸 무서운 중국의 실체와 향후 행보, 우리의 대응전략을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 전문가 10명이 공유했다. 정 이사장의 중국 분석 시리즈 ‘극중지계(克中之計)’의 3권이자 완결판이기도 하다. 14일 출판기념 세미나에 앞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저자들은 시 주석의 중국공산당 총서기 3연임(지난해 10월)으로 중국은 ‘1인 지배 전체주의’ 국가가 됐다고 본다. 시진핑 시대로 불릴 수 있는 '3기 중화인민공화국'의 시작이기도 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부터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이전까지 중국의 60년은 마오쩌둥(毛澤東)의 30년과 덩샤오핑(鄧小平)의 30년으로 각각 나뉜다. 마오의 30년은 사회주의 중국 건설시대로 이념이 지배했던 시기다. 덩의 30년은 이념보다 실사구시를, 당과 국가 못지않게 인민의 삶을 중시하는 시대였는데 그 위에 시진핑의 30년이 추가된 셈이다. 

문제는 시진핑 시대는 역행의 시대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시진핑 통치술에 마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지적한다. 시 주석이 앞으로 10년을 더 집권하고, 그 이후 10년도 덩샤오핑처럼 공식직함 없이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휘두를 텐데 중화민족주의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며 마오 시대의 1인체제로 돌아가려는 행태를 보일 것으로 우려했다.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 즉 거대·권위주의 국가가 쌍두마차로 미국 중심의 자유세계 동맹과 충돌한다면 민주주의 국제규범의 틀을 전제로 발전한 한국에는 시련이 예상된다.


시진핑을 위협하는 4대 함정

저자들은 시 주석의 영구집권은 중국과 중국 국민에게 불행이라고 말한다. 자유와 창의를 억압하는 정치행태와 구조적 저출산이 맞물려 당장 미국 추월의 꿈부터 물건너갔다고 단정한다. 정 이사장은 구체적으로 ‘4대 함정’을 제시한다. 먼저 중진국 함정. 세계경제 침체와 시 주석의 반시장적 정책, 미국의 중국 조이기로 성장잠재력이 하락하고 있다. 덩 체제에서 미래를 추구하던 시장경제 참여자들은 중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타키투스의 함정인데, 국민의 신뢰 상실로 인한 권력 상실을 의미한다. 권위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체제 구축이 강행되고 그 압박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민중봉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중국 전역의 제로 코로나 정책 시위 사태는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세 번째는 킨틀버거의 함정인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리더십 부족이 문제가 된다. 전랑외교로 돌변한 중국의 약탈적 대외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마지막 투키디데스 함정은 미국의 강력한 견제다. 중국 GDP가 미국의 70%에 도달한 2020년, '중국이 2030년에는 미국을 앞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제 그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중국의 연간 성장률이 6%에 달해야 하는데, 2021년과 지난해 성장률은 2.4%와 3%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향후 2% 이상 성장력을 회복할 능력이 충분하다.


저자들은 시진핑 시대가 출발부터 장애를 마주하고 있다고 봤다. 네 가지 가운데 한 가지에라도 빠지면 안 되는데, 그 어떤 함정도 극복하기 쉽지 않다. 다만 중국이 어부지리로 4대 함정을 극복할 가능성은 있다. 윤영관 전 장관은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같은 후보가 승리하여 미국이 고립주의 외교노선으로 회귀하고 대중 국제연대가 흐트러진다면 권위주의 세력이 확장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진핑의 위험한 한반도 인식

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우려하는 건 시 주석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이다. 그의 목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세계 최강 국력을 자랑했던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시대의 중국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1949년(중화인민공화국 건국)까지를 ‘치욕의 100년’으로 분류한다. 1879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1884년 청불전쟁으로 베트남에 대한 영향력을 프랑스에, 1894년 청일전쟁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 중국이 영향력 소실의 역순으로 회복에 나선다면 그 작업은 한반도부터 시작되는 셈이며,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했던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국 역사의 일부였다”도 괜한 말이 아니다.

한중수교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그림 속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덩샤오핑과 단절한 시진핑의 중국은 ‘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며 이웃을 압박한다. 새로운 중국의 이런 행태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게 저자들의 상황인식이다.


한국, 긴 호흡으로 중국 압박 이겨내야

저자들은 시진핑 시대는 잔혹한 겨울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한중 사이에 정체성의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국가 전체의 생존방정식 차원에서 보면 중국은 한국의 영원한 공존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고도 진단한다. 한국의 주권과 생존권, 그리고 정체성을 위협하는 중국의 어떤 행동에도 결사적으로 거부하면서도 그들과의 공존질서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만 영해, 영공 등 민감성 높은 이슈가 새롭게 부상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우리의 군사이익을 기타 영역에서의 국익을 보호하는 장치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력이 신장하고 국익이 확대된 만큼 우리 외교도 군사, 국방, 안보, 경제, 무역, 영사 등의 영역을 넘나드는 협상 전술의 고도화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